부드러운 미소를 벗고 싶은 남자, <파란자전거> 양진우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다. 오래 남을 수 있는 좋은 영화에 나올 수 있다면. | 2007년 4월 20일 금요일 | 민용준 기자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다. 오래 남을 수 있는 좋은 영화에 나올 수 있다면. | 2007년 4월 20일 금요일 | 민용준 기자
원래 내가 작곡하려고 장비까지 다 구입했다. 어릴 때 호주에서 지낼 때 우연히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 그래서 이게 무슨 노래인가 했더니 조빔 노래더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Brasileiro de Almeida Jobim). 그 때 처음 재즈를 접하고 동시에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학생 시절 돈이 궁할 때도 CD사는 게 낙이었다. 비닐을 벗기 전까지의 설레임! 그러다가 막상 듣고 나서 맘에 안 들면 배신감 느끼고. (웃음)
CD도 굉장히 많겠다.
근데 호주에 다 놔두고 왔다. 형한테 다 주고 오고.
아까워서 어떡하나. (웃음) 여행도 좋아하나?
너무 좋다. 사실 다음 주에 <로맨스 헌터>끝나면 태국 가려고 했다. 너무 추울 때 촬영을 많이 해서 따뜻한 곳에 가고 싶더라. 그런데 19일부터 바로 영화 개봉하고, 일단 출연하기로 한 <세븐 데이즈> 준비도 해야 되고. 사실 아직 새로 나온 대본도 못 봤다. <로맨스 헌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서.
호주도 지금 따뜻하지 않나?
지금이면 많이 따뜻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호주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안 가본 곳, 새로운 곳에 가고 싶기도 하고. 2년 전인가 3년 전에 일 때문에 잠깐 갔었다. 일주일동안. 내가 여기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느낌까지 들 정도로 낯설더라.
호주는 언제부터 산건가? 혹시 태생부터?
초등학교 때 이민갔다. 그리고 2001년도 쯤에 들어왔다. 대학교 졸업하고. 벌써 6년 전이네.
그럼 이젠 완전 적응됐겠다. 그래도 처음엔 좀 힘들었을텐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느껴지니까. 자신도 모르게 외국 생활과 외국 사람들에 익숙해져 버리니까 처음에 와선 뭔가 조금 답답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많이 무뎌졌다.
한국어에 익숙해지는 것도 힘들었겠다.
3년 걸렸다. 굴러가는 발음 빼는 것만. (웃음) 이젠 내가 먼저 그런 부분의 이야길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의 모른다. 솔직히 사람들이 아예 모르는 게 낫기도 하고. 뭐랄까. 외국에서 왔다하면 시선이 곱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 그냥 그런 사람들 때문에 먼저 그런 이야긴 안한다.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연기를 하기 위해 입국했다고 들었는데, 전공이 원래 연기였나?
아니다. 국제 경영학과. 사실은 연기보단 제작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시절 방송 학과랑 복수전공을 하기도 했는데 졸업은 경영학과 전공이었다. 어쨌든 졸업반일 때 일본에 교환 학생으로 갔었다. 한 학기 정도. 그런데 그 당시 일본에 참 좋은 작품이 많았다. 미국이나 유럽 수준의 드라마나 영화들이. 부럽더라. 외국에서 인정도 많이 받고. 그 때쯤 한국에서도 영화 붐이 일어났다. <친구>같은 영화들이 꽤 많이 흥행되고. 그래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고 싶어졌다. 한국에서도 세계에 내놓을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교환 학생이 끝나고 호주로 돌아가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으로 나와버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내가 크리스천인데 한국오기 전, 한 달 동안 기도를 많이 했다. 어떡해야 할지. 전공 다 버리고 갑자기 호주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보통일은 아니잖나. 큰 회사들이 학교로 와서 컨택(contact)하고 다른 친구들은 면접보는데 나는 다른 짓을 하고 있으니, 엄청 고민되더라. 한 달 동안 기도를 하다가 ‘이게 길인가보다’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제작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
사실 그 때 좀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다. 어리석었다고 할까. 그냥 연기하면서 영화를 배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무대포로 바로 나왔다. 연기 공부하면서, 전체적으로 훑어보듯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연기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갔는데 제일 처음에 그냥 알겠더라. “아, 나 진짜 직업 선택 잘 했구나.” (웃음) 사실 처음에 너무 못했다. 발음도 이상하고, 또 영어발음도 안 고쳐지고.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했는데 사람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생기더라. 내가 진짜 사랑하는 일을 찾았구나 싶은. 지금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한다. 매번 그렇게 그 마음같이.
혹시 동물 좋아하나?
너무 좋아한다. 개들하고도 잘 논다.
<파란 자전거>에서 코끼리 사육사로 나오잖나. 개하고는 스케일이 다른데. (웃음) 코끼리와 촬영하는데 애 먹은 일은 없나?
사실 코끼리랑 찍는 게 2씬 밖에 안 된다. 아마 2~3일 촬영 분량 정도? 그런데 코끼리 가까이 갈 일은 없었다. 그냥 코끼리 용변 치우는 것만. 멀리서. 왜냐면 훈련된 코끼리가 아니고 그냥 동물원에 있는 그런 코끼리들이라 다른 누군가가 우리에 들어오면 되게 싫어한다. 누가 들어오면 막 달려온다. 그래서 촬영하는데 진짜 고생했다. 가만히 안 있어서. 아무리 저쪽에서 빵을 주고 그래도 우리가 들어가면 그쪽으로 막 달려오는 거다. 그것 때문에 조금 고생했다.
아, 그랬던 것 같다.
응? <파란 자전거>를 본건가?
난 올 초에 우연히 봤다. 일반 관객 모아놓고 하는 모니터 시사회로. 아, 아직 못 보셨나?
못 봤어요.
어째서? 아직 기술 시사도 안했나? (이 인터뷰는 기자시사회 전에 이뤄졌다.)
감독님이 기술 시사 때 부르질 않더라. 완전 편집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다나. 나중에 보라고 그러시더라. 어땠을까? 일단 나도 되게 궁금한데.
갑자기 주객이 전도되는 기분인데. (웃음) 일단 난 한 장면이 깊게 남았다. 영화는 못 봤지만 연기한 장면은 기억날까? 동규가 창고에서 철사로 만든 아기코끼리 발견하는 장면.
아, 알겠다. 사실 촬영 첫날부터 나흘 동안 밤을 샜다. 첫 촬영부터. 그 때 난 <전설의 고향> 촬영 끝내고 바로 전주로 넘어갔는데 바로 첫 촬영으로 밤을 샜다. 첫 날부터, 그 다음 날도 또 새고, 또 새고, 나흘 동안. 그런데 둘째 날인가, 셋째 날인가 제일 중요한 씬을 찍는다는 거다. 그 씬을. 나도 시나리오 읽으면서 ‘와, 이건 진짜 잘해야겠다.’고 염두에 둔 씬이었는데 그렇게 며칠 동안 촬영하니까 막 지쳐버린 거다. 몸이. 가만히 앉아있어도 죽겠더라. 그래서 완전히 이상하게 연기가 나와 버렸다. 눈물도 안 나오고, 감정도 안 올라오고. 그래도 억지로 어떻게 했다. 그런데 그 날 촬영을 마치고 잠을 못 자겠더라. 그래서 또 잠을 못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현장에서 감독님을 뵀는데 감독님도 잠을 못 잤나보더라. 감독님도 굉장히 중요한 씬이라 생각했을 테니. 근데 감독님은 내가 힘들어하는 걸 봤다더라. 촬영 들어가기 전에, ‘얘가 좀 안좋구나’ 싶었던 거지. 그래도 저예산 영화니까 편차는 마쳐야 되니 안 찍을 수도 없어서 찍었던 거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어땠냐? 어제.”라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솔직히 제가 하고 싶은 만큼 안 됐어요.”라고 솔직히 대답하니까 “다시 찍을래?”라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반갑게 “네. 다시 찍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다시 찍었다.
그래도 그렇게 찍어서 다행이다. 상당히 중요한 장면인데. 사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클라이맥스잖나.
그 장면은 나도 너무나 욕심이 났던 장면이라서. 무엇보다도 감독님께서 <파란 자전거>에 애정이 많았고, 나도 이 작품에 애정이 많았는데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보니까 강행을 하게 됐고 그래서 놓친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감독님도 편집하며 아쉬움이 굉장히 많았을 거다. 여유가 있었으면 좀 더 멋지게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아침을 굶어가면서, 야식을 굶어가면서 찍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그런데 모르겠다. 아직 영화를 안 봐서 너무 궁금한데. 어떻게 나왔을지!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처음부터 사흘이나 날을 샜을까? 사람을 안 재울 정도로 중요한 촬영이었던 건가?
그니까 해질 때 촬영하고 해 뜰 때 숙소로 갔다가, 다시 해질 때 갔다가 또 해 뜨면 숙소로 가고, 첫날부터 밤 씬을 강행했다. 우리가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에서 촬영했는데 조그만 슈퍼를 정리해서 자전거포로 만든 거다. 그런데 그곳을 빌릴 수 있는 기간 안에 그 분량을 최대한 빨리 많이 찍어야 되니 밤을 안 샐 수가 없더라. 마지막엔 구경하던 아저씨가 술 먹고 난리쳐서 애 먹기도 했다. (웃음)
진짜 의수 만드는 분한테 가서 제작한 손이다. 최대한 우리는 진짜 손처럼 만들고 싶어서. 그 분이 굉장히 오래 하신 분이라 여러 장애우들과 접하셨나 보더라. 그래서 장애우 분들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최대한 감추려고 한다더라. 장애우들이.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고. 최대한 안보이게 하려고 장갑을 낀다던지, 주머니에 넣는다던지. 그래서 딱 달라붙는 바지도 안 입는단다. 헐렁한 바지만 입는다. 손이 주머니에 잘 들어가는.
나도 중학교 시절에 손에 장애가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긴소매 옷을 입고 소매로 손을 감싸고 다니더라. 그 기억이 난다.
<파란 자전거>에는 장애를 극복하는 메시지도 많이 담겨있는데, 나도 촬영을 하고 나니 숨길 필요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봐 스스로가 먼저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차별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먼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마음을 못 열어서. 남들이 마음을 닫아놓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닫아서.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기 어렵고. <파란 자전거>는 그런 걸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사랑을 통해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죠.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 두 남녀의 로맨스로 오해할 여지가 있을 것 같던데. (웃음) 사실 그것보단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관계가 중요한데.
처음부터 감독님께서 대사, 캐릭터 분석하며 이야기하신 게, 가족영화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공감이 갔다. 그게 글로만 읽었는데 너무 와 닿더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서. 그래서 읽자마자 바로 감독님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너무 하고 싶다고. 이런 감정은 오랜만에 느껴서. 뭔가 와 닿는. 그래서 연기할 땐 그런 느낌이 안 살아날까봐 더 떨렸고.
공감했다니 실제 아버지가 어떤 분일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읽고 공감했었던 이유가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을 못하는 거, 표현의 장애랄까? 아버지가 무뚝뚝한 경상도 분이다. 말도 많이 없으시고 말을 해도 그냥 ‘촬영은 잘 하고 있냐. 밥 먹었냐. 아픈 덴 없냐.’ 그런 식의 일상적인 대화만 하게 된다. <파란 자전거>의 아버지와 동규처럼. 아버지는 뭔가 해 주고 싶은데 동규는 맘이 이미 닫혀있고 원하는 것도 없고,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서로 대화도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먹서먹해지고. 그런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관계가 굉장히 많지 않나? 아무래도 많은 남자들이 공감할 것 같다. 나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근데 또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니까. 안 그러려 해도. 그래서 동규도 마지막에 후회를 많이 하는 거고.
그런데 아버지께서 처음에 연기한다 그러니 뭐라던가.
사실 나도 아버지 반응이 제일 궁금했다. 일단 어머니께선 잘 생각했다면서 서포트를 많이 해 주셨다. 사실 아버지께서 의사다. 그래서 고지식하신 면도 많으시다. 근데 처음 뜻을 밝히니까 의외로 “이왕 할 거면 최고가 돼야지.” 하시더라. 뜻밖이었고 되게 고마웠다. 아버지께서 격려해주시니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이해해주시니까.
왠지 영화에서 오광록 씨가 연기한 아버지와 같은 인자함이 확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광록이 형을 굉장히 가깝게 느꼈다. 매일 술 마시고 취해도 좋고, 힘든 거 없었고.
오광록 씨와 많이 친해졌나보다. 꽤나 독특한 캐릭터가 매력적인 분인데.
굉장히 샤프하시다. 그냥 뭐 하나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도 없고. 되게 재밌으시다. 그리고 그냥 대충 하실 것 같은 상황에서도 놓치는 거 하나 없다. 다들 알아차릴 정도로 술이 취했단 생각이 들 때도 사람들을 다 관찰하고 있을 정도로. 되게 부드러우면서 굉장히 날카롭고.
섬세할 것 같다. 시인이잖나.
내가 광록이 형을 처음 봤을 때가 <파란 자전거> 촬영 때문에 전주 내려가기 전 첫 회식 때였다. 그런데 이미 광록이 형은 어디서 또 한잔 하시고 오셨더라. 그런데 오자마자 막 시를 읊으시더라. (웃음) 그런데 내가 술을 못 한다. 그런데 막 술을 먹이셔서 내가 막 도망쳤다. 그리고 나중에 광록이 형하고 술 자주 마셨다. 그런데 나중에 “난 네가 이렇게 서글서글한 애인지 몰랐다.”고 하더라. 첫인상이 자기 것만 챙기고 대충대충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나. (웃음) 그런데 형한테 연락도 자주 하고 그러니까 달리 보였나보다. 광록이 형하고 영화하면서 많이 배웠다. 배우로서의 자세부터. 무엇보다 너무 좋은 분이다.
첫 주연이라 본인에게 <파란 자전거>의 의미가 클 것 같은데.
그래서 촬영할 때 힘든 게 힘든 게 아니었다. 애정이 생기니까. 많이 힘든 거 못 느끼고 촬영했던 것 같다.
혹시 왼손잡이?
아니, 오른손잡이.
그런데 의수는 오른손에 끼웠잖나. 의수 끼고 자전거까지 타던데.
촬영할 때만 끼긴 했는데 엄청 불편했다. 오른손이 없는 셈이었지. 양말을 신는 것조차 힘들었다. 안에 있는 오른손도 답답했고. 그런데 <파란 자전거>를 찍고 바로 <동갑내기 과오하기 레슨 2>를 촬영하러 갔는데 왜 자꾸 왼손으로만 연기를 하냐고 하더라. (웃음) 나도 모르게 모든 걸 다 왼손으로 하고 있는 거다. 오른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고. 아차 싶었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나?
<메멘토>같은 거.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없는데, 뭐랄까. 감독만의 특별한 스타일이나 독특한 상상들. 그런 게 돋보이는 그런 영화가 좋다. <펄프 픽션>이나 <파이트 클럽>같이 기발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들을 주로 좋아하는 편이다.
많이 조용한 성격이긴 하다. 나가서 시끄럽게 나서고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솔직히 그래선지 그런 역할의 제의를 많이 받더라. 그래서 이번에 <파란 자전거>의 동규가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웃기만 하는 이미지가 싫어서. 웃는 얼굴이 익숙하고 그러다보니 사람이 부드럽게만 보인다고 그래서 그런 이미지에 틀어박힐까봐. <파란 자전거>의 동규는 영화에서 웃는 게 두세 번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이번에 준비하는 <세븐 데이즈>에선 완전 마약에 빠진 친구로도 나오고. 사실 <로맨스 헌터>의 정호재는 내 성격이랑 비슷한 면도 많고 그래서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세븐 데이즈>는 나름대로 기대가 될 것 같다.
나름대로 변신이니까. 미쳐버릴 수 있는 그런 캐릭터라서. 원래 선아 누나 때문에 하게 된건데.
김선아 씨 덕분에? 친하나?
같은 사무실이라 인사하면서 몇 번 이야기 나눈 정도? 그렇게 뭐 친한 것도 아닌데, 시나리오 읽고 나니 내 눈빛이 딱 생각나더란다. 그 캐릭터가. 그런데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10회차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니까. 근데 좀 포인트가 있는 그런 캐릭터다. 영화에 전환을 주는.
선한 마스크가 오히려 악역에 어울릴 때가 많다. 악역 해보고 싶단 생각은 안 해봤나?
사실 악역을 굉장히 해보고 싶다. 난 사실 미소지으면서 부드러운 이미지 드러내는 역할을 정말 하기 싫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악역도 굉장히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 그래서 <세븐 데이즈>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반갑고 앞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변할 수 있겠죠.
일본 드라마에도 나왔다고 하던데.
사실 일본에서 출연한 드라마가 시청률이 굉장히 좋았다. 일본에선 드라마가 낮에 하는데 그 당시 동시간대 드라마 중 시청률이 제일 좋았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하고. 그 이후로 일본에서 DVD나 영상화보집도 내게 되고, 덕분에 돌고래와 수영도 해보고.
돌고래?
원래 돌고래랑 같이 수영해보고 싶었다. 일본에서 영상집을 찍는데 내가 호주가서 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에서 하지말고. 그랬더니 호주에서 뭐하고 싶냐고 묻길래 처음엔 상어 케이지에 들어가서 상어들 보는 거 하고 싶다고 하니 그건 촬영하기 너무 힘들다고 질색하더라. (웃음) 그래서 그럼 돌고래랑 같이 수영하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호주 씨월드에서 촬영했다. 암벽타기 하는 것도 찍고, 서핑하는 것도 찍고.
운동 좋아하나? 자전거는 잘 타던데.
헬스 같은 건 재미없다. 대신 사람들과 모여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좋아하지. 등산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해보지 못한 운동 있으면 그냥 한다. 그래도 특별히 잘하는 운동은 없다. 그래도 다 한다. 이번에 럭비클럽을 내가 만들었다. 사람들 모아서 여름에 시작해 보려고. 근데 우리나라에 럭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지. (웃음)
의외다. 정적인 것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도 많을 것 같고.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긴 한다. 걱정 같은 건 잘 안하는데 엉뚱한 생각들은. 나 혼자 생각하면서 웃기도 하고. 어이없는 생각들. 상황에 맞지 않는 느닷없는.
음..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 약간 억울한데. (웃음)
현실에서라도 해야지. (웃음) 이상형은 아니더라도 좋아하고 싶은, 혹은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가 어땠으면 하는 거 있나?
독립적이면서도 도도하고 섹시하고 강한 여자, 그리고 가정적인 면이 있는 사람. 가정을 잘 꾸려나갈 것만 같은. 무조건 착한 여자보단 자기 의견이나 자기 생각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당돌함이 있는 게 좋다. 그러면서도 가정에 충실하고. 찾기는 힘들겠지만.
정말 찾기 힘들 것 같은데! (웃음) 어쨌든 마술사, 라디오 PD, 조선시대 선비, 그리고 코끼리 사육사까지 연기를 통해 해봤다. 조만간 마약 중독자도 될 테고. 그런데 만약 연기 안했다면 본인은 뭐 했을 것 같나?
아마 호주에서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걸. 열심히. 조용하게 지내고 있을 듯.
경영학과 출신인데 전공에 대한 꿈은 없나?
지금도 전공을 살리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런데 그건 10년이나 20년 뒤의 미래 이야기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제일 즐겁다. 지금은.
지금은 연기자다. 그리고 10년 뒤 다른 걸 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뭔가 막연한 목표라도 있다면?
난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손자 손녀들이 내가 출연한 영화를 봤을 때 ‘재미있다’, ‘멋있다’란 말 들을 수 있는 좋은 작품들에 많이 출연하고 싶다는 것. 오래오래 50년, 100년 동안 남을 좋은 영화들.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다. 그런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그게 내 꿈이다. 오래 남고 싶다는 것. 지금은 일단 내가 하는 연기자로서.
<파란 자전거>는 그런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일단 봐야 알지! (웃음) 그래도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테고.
2007년 4월 20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
2007년 4월 20일 금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