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스타를 직접 본다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특별한 경험이 되고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언어가 틀린 그들과 도란도란 말을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자체가 삶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월드 스타와의 만남. 그러나 그것 또한 그때뿐이더라. 그들 또한 사람이고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 힘들어하며 무슨 말을 건넬지 고민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무인 곽원갑> 홍보 차 내한한 우인태 감독과 이연걸은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피로해 보였다. 무궁화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의 스위트룸에 어울리는 유명인으로서의 아우라는 화려한 홀을 밝게 비추지만 왠지 그들의 짧은 휴식마저도 뺏은 듯한 기분이 들어 인사도 나누기 전에 미안한 감정이 몰려든다. 유년의 영웅 이연걸을 본다는 설레는 맘에 잠을 설쳤기에 오늘의 만남을 한 순간의 스침으로 만들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시작부터 기합이 팍 들어간 인터뷰가 돼버렸다.
그는 자신의 직업상, 한국을 방문한 목적상 지금의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해도 타국에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나보다. 또한 앞전에서도 한국매체와의 인터뷰를 진행해서인지 ‘한류’에 대한 언급을 미리 함으로써 반복되는 질문을 피하려는 눈치가 역력했다.
어색한 잠시 잠깐의 침묵. 이 여우같은 대스타 앞에서 순간 말문이 막힌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한결같은 그의 외모와 건강에 대해, 미련한 질문을 했다. “관객이 볼 때는 영화상에서 20여 전과 같은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월은 어디 안 간다. 젊었을 때는 당연히 체력이 좋은 게 당연한 거고 나이가 들면 확실히 체력이 좀 약해진다. 마치 영화 안에서의 곽원갑처럼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도 정신도 육체도 변화하고 있다. 사실 특별한 건강비법은 없다”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한 관심을 영화 쪽으로 돌리는 이연걸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가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인태 감독은 “곽원갑에 대한 영화를 만든 이유는 그의 무술철학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그의 철학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영화는 현실적인 액션을 그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역사적 배경, 싸우는 장면 등이 곽원갑의 무술세계를 충분히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무술감독 원화평과 상의해서 펀치 하나하나에 무술의 근본을 담아내려 애썼다. 결국 제작기간도 길어졌다”
우리에게 <백발마녀전>으로 잘 알려진 우인태 감독은, 영어로 말해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매사에 자신 있는 어투로 자신의 영화를 설명했다.
그러나 일대일 대결을 기반으로 한 <무인 곽원갑>은 ‘스트리트 파이터’같은 박진감과 긴장감 그리고 액션 그 자체에서 오는 재미가 여느 상업영화처럼 도드라진 영화는 아니었다고, 본 기자는 강력 주장했다. “그건 당신의 생각 일 뿐이다. 남들은 그렇게 보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흥~~ 영화의 전체 흐름상 액션을 그런 식으로 구성하고 배치했다. 주인공 곽원갑의 정신을 극대화 시켜 표현하는 선에서 액션을 구성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장기, 특기가 드러나지 않은 면도 있다. 하지만 곽원갑이 상대방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런 면이 충분히 부각되었다고 생각하고 오직 액션 때문에 극 전체의 재미가 반감되지 않았을 거다” 우인태 감독은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기자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썩 기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화가 난 것은 아니니 걱정 마시길. 이 이후로 인터뷰는 정말 영화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연걸은 우인태 감독의 대답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첨언했다.
긴 그의 말이 끝나자 <무인 곽원갑>에 대한 그들의 애정과 노고가 느껴진다.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영화를 리플레이하면서 액션 장면 중 곽원갑의 내면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을 떠올려봤다. 더불어 관객들에게 주는 일종의 관람 팁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대결 장면보다는 일본인과 차를 마시는 장면에 내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강하게 담겨 있다. 차의 종류는 여러 가지지만 결국 본질은 하나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술은 남과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기기 위해 개발된 훈련 도구라 볼 수 있다. 차를 마시는 장면엔 이 모든 게 담겨 있다” 결국 이 말은 이연걸이라는 배우가 무술영화 즉,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무인 곽원갑>에 응집되어 있다는 말일 게다. 이런 이유로 영화 마케팅 컨셉을 ‘이연걸의 마지막 무술영화’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지 않았던가.
“나의 마지막 무술영화라고 얘기한 것은 20여 년 동안 무술인, 배우로서 생활하는 동안 느낀 감정이나 철학을 이 영화에 다 쏟아냈기 때문이다. 나의 무술과 액션을 이 영화에서 다 보여주었기 때문에 내가 다른 무술영화들을 찍었을 경우 남들이 ‘찍을 필요 없는데..’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가 말하고픈 모든 것이 다 표현됐다. 물론 나의 이런 면이 나오지 않는 다른 영화에 ‘당연히’ 연기자로서 나올 것이다” 그렇군. 광고카피만 믿고 엄숙하게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은 이들에게 이연걸의 대답은 반가운 해명이 될 것이다.
“내가 죽지 않는 한 관객들이 봐야 할 영화에는 내가 나올 것이다”
이연걸의 이 말은 그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운 많은 이들에게 우황청심환이 될 듯. 사실 이연걸은 은막의 스타라기보다 청춘의 한 단락을 동고동락한 상징적인 존재다. 때문에 그를 만나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누군가에는 평생 잊지 못할 만남으로 기억된다는 뜻과 동일할 것이다.
“예전 홍콩(중국)영화들이 한국에서 절대적 인기를 누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여러 영화를 통해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 한국의 문화나 영화들이 전 아시아에서 사랑받듯이 말이다. 나를 좋아하면서 큰 세대들에게 내가 특별한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요즘 중국영화는 세계에서 환대받고 있다. 마치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의 홍콩영화가 아시아에서 사랑 받았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영화에 쏟아진 관심은 서구 사회가 중국문화에 대해 갖는 관심의 한 표현이다. 이것은 인터넷과 통신이 발전하고 미국의 자본력과 중국문화가 합쳐지면서 생긴 시너지 효과로 얻어진 결과물이다. 이렇듯 영화는 계절처럼 사랑 받을 때도 있고 그 사랑이 쇄할 때도 있다고 본다. 나는 그 안에서 오직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영화를 만드는 문제자체가 애매모호한 일이다. 만드는 와중에도 이 영화가 된다 라고 아무도 판단을 못 내린다. 결국 영화인들은 영화를 찍을 때마다 매번 100%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도 영화에 대한 확신은 스크린에 걸릴 때까지 아무도 못하기 때문에 그 기분에 영화를 포기 못하고 계속해서 또 다른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우인태 감독과 이연걸은 <무인 곽원갑>이 언제나 미지수일 수밖에 없는 영화작업 안에서도 어떤 확신을 갖고 찍은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내 청춘의 영웅들을 만나서 깨달은 것은 영화에 대한 어떤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영화에의 신뢰와 그들을 아직까지도 흠모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의 현재의 나다. 영화는 과거를 현재와 뒤바꾸고 지나간 사랑도 다시금 불타오르게 하는 마법의 주문임을 환기할 수 있었던 특별한 만남이었다. 역시 세계적 스타를 만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닌가보다.
※ 이 인터뷰는 맥스무비, 마이데일리, 조이뉴스24와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임을 밝힙니다.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권영탕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