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고전미가 살아있는 멜로다! ‘봄의 눈’의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2005PIFF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인터뷰 | 2005년 10월 18일 화요일 | 최경희 기자
2005PIFF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인터뷰 | 2005년 10월 18일 화요일 | 최경희 기자
꼭 1년만이다. 2004PIFF에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을 인터뷰할 당시에는 본 기자 옆에서 그저 조용히 구경만 해야 하는 객원기자 신세였다.(지금 정식기자가 됐다고 자랑하는 것 절대 아니다!) 여전히 스타일리쉬한 모습으로 쇼파에 앉아 정확히 말하면, 너부러져 있는 그를 보았을 때, 지난 1년여의 파란만장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다면 그건 뻥이고!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오랜만이네요!’하는 인사가 먼저 튀어나왔다. 기본적인 한국어 즉, 인사말만 알고 있는 그는 결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작년에는 신파멜로인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부산을 방문하더니 올해에는 좀 더 실험적인 멜로영화 <봄의 눈>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영화의 고유의 특성인 고전적인 형식미가 살아있는 독특한 멜로드라마라고 한다, 특히,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짱!인 일본의 대표적인 꽃미남 ‘츠마부키 사토시’를 주연으로 기용한 작품인 만큼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하루 빨리 <봄의 눈>을 한국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감추지 못했다.
츠마부키 사토시와 함께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그를 너무 서둘러 만나는 통에 알짜배기 질문을 간추리지 못했는데, 그는 허접한 질문 하나에도 성심을 다해 세 가지 이상의 다양한 답변을 쏟아내 주었다. 겉보기와는 달리(워낙에 옷차림이 감독치고는 튀지 않는가!) 겸손하고 성실한 유키사다 감독과의 인터뷰가 그의 매력적인 작품들을 다시 한 번 감상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유키사다 이사오(이하 이사오): 나를 봤다고?!(하하) 사실은 내가 전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젯밤에 못 마시는 술을 마셨는데 처음에는 속이 미식거리더니 나중에는 기분이 좋아지더라. ‘아~ 내가 술을 마실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가, 왠지 오늘 아침이 활기차게 느껴진다.
최: 부산국제영화제에 5회부터 지금 10회까지 꾸준하게 방문하는 걸로 알고 있다. 부산영화제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느껴진다.
이사오: 내 작품을 해외영화제에서 최초로 인정해줬던 곳이 바로 부산영화제다. 그때가 5회째 부산영화제였는데 횟수로 5년 전이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때, 한국 감독과 제작자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함께 어울러져서 하나의 커다란 에너지를 형성하고 그 열기를 발산하는 것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열정적인 관객들의 모습도 나에게 같은 영향을 미쳤다. 결국 그런 것들이 내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영화를 열심히 만들 수 있게 만들어준 새로운 에너지원이다.
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에게 한국, 즉 부산영화제가 그런 영향을 미치는 줄은 몰랐다.
이사오: 그 당시 일본관객들은 자국영화를 부산영화제 관객들처럼 (열정적으로) 보지 않았는데 최근에 들어서 일본관객들이 다시 일본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내가 부산에 왔을 때 인상 깊게 본 관객들처럼, 요 근래 일본영화계가 그런 관객들을 되찾고 있는 분위기다. 그 원점에는 부산영화제에서 봤던 풍경들이 강하게 남아 있다. 회를 거듭할수록 부산영화제는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데 일본영화계는 관객은 되찾았지만 영화계 전체의 결속력이라던 지, 유대관계는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때문에 작품을 계속해서 만드는 감독으로서의 파워나 에너지를 부산에서 아직도 얻어간다.
이사오: 감독들은 해외영화제에 참석할 기회가 많고 거기서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데 배우들은 그런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일단은 좋은 작품을 만나야 되고 타이밍도 맞아야 한다. 거기다 배우는 워낙에 바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감독들보다 해외영화제에 나갈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런데 일본 안에서 볼 때 영화 <봄의 눈>은 어떻게 보면 ‘야심작’이라 할만하다. 그렇다고 대중적이고 흥행성이 높은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고전적인 형식미를 중시한 이 작품에서 츠마부키가 연기를 했다는 것은 배우의 캐리어적인 측면으로 볼 때, 한 단계 스텝을 밟아 올랐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는 일반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소년을 연기해 왔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전혀 새로운 연기세계에 도전했다. 영화 안에서 배우로서 자기 세계를 넓혔다면 바깥세계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또 다시 자기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또 일본배우가 외국에서 이만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본인이 직접 체험한다는 것은 굉장한 자신감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최: 츠마부키의 실제 반응은 어떤가?
이사오: 본인 자신도 부산영화제에서의 상당히 뜨거운 반응에 많이 놀라고 있다. 당황하면서도 그것이 자극이 돼, 배우로서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은 새로운 욕심이 생긴 것 같다. 감독, 제작자만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젊은 배우들도 경험을 통해 함께 뭔가 하고 싶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실제로 츠마부키 사토시가 이병헌과의 오픈토크를 진행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로서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배우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최: 일본영화라고 하면 한국에선 아직까지 매니아들만의 영화로 소비되는 경향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일본에선 당신은 매우 대중적인 작품을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한 걸로 알고 있다. 같은 영화를 가지고 다른 식으로 소비되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알고 있는가?
이사오: 일본영화가 한국에선 흥행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일본과 한국에 있어서의 영화의 거리를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는 가를 그동안 고민해왔다. 일단 내 자신도 한국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한류와는 다르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한국영화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서, 많은 재미를 느끼고 자극을 받고 있다.
근대 이번에 츠마부키 사토시와 함께 부산에 와서 그에 대한 팬들의 열기를 보고 무척 놀랐다. 그저 '일본영화 매니아들만 좋아하는 수준이겠지'하고 생각을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츠마부키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매니아층이 선호하는 일본영화에서 변화를 모색해, 대중적으로 다가 설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느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의 가장 큰 수확이다.
최: 혹시 그 다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둔 방법 같은 것이 있는가? 한국내에서 일본영화의 대중화를 위해서 말이다.
이사오: 물론, 스타에 대한 한국관객의 관심을 다음단계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일본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부산영화제를 통해서 여러 미팅도 하고 한국 감독, 제작자를 만났는데 앞으로는 한국배우와 일본제작시스템을 융화해서 영화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일본에서 만든 기획과 한국에서 만든 기획을 교환해서 감독만 다르게 작업할 수 있다. 이 감독이 기획했던 것을 내가 찍고 내가 기획한 작업을 한국 감독이 찍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작업을 서로 교환하다 보면 스타일도 전혀 다르게 나올 거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정서나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게 나온다. 결국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뭔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배우를 교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만약 이런 것들이 실현된다면 서로의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가능성이 이 과정 안에 담길 것이고 영화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늘 생각해왔다. 아마 유례없는 크레에티브가 생성될 공산이 크다.
이사오: 좋게 얘기하면 내 안에 서랍이 많은 거다. 사실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조감독 시절에 작가주의에 빠져버리고 어떤 한계에 봉착하는 분들을 많이 봐왔고 특정 장르에 구애를 받게 되면 그 한계에 더 빨리 다다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많은 것을 접하면서 내 안에 새로운 세계를 계속해서 넓혀가고 싶은 욕구가 크다. 현재도 그 과정에 있고 발전하고 있는 와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멜로든 사극이든 다른 접근 방법으로 새로운 실험을 지금 하고 있다. 언제든 영화 <고>같은 스타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스스로 나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커서 당분간은 다양한 장르에 도전을 할 것이다.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조차 <고>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굳이 다른 장르를 선택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는 지금 말한 대로다. 만약에 에너지가 소모되고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면 나한테 가장 편한 장르를 선택해 영화를 만들 거다.
최: 그렇다면 <오늘의 사건사고>같은 작품을 그때 만들어주면 좋겠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다.
이사오: 오호~ 그 작품을 봤다고(하하). 굉장히 귀한 작품을 당신은 본 거다.
이사오: 영화<봄의 눈>은 일본영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50~60년대의 영화적인 것들을 답습한 고전적인 러브스토리다. 나는 일본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형식미나 양식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자라난 세대에 속한다. 내 무의식에 체화된 것을 현대판으로 옮겨 놓은 영화가 <봄의 눈>이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츠마부키 사토시, 다케유치 유코를 같이 출연시킴으로써 현대적 느낌에 맞게 재구성이 됐다.
최: 현대적 멜로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고전적인 형식미가 중시된 작품이라니 의외다.
이사오: 요즘 영화들이 상업적 인기나 대중의 취향에 편승해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이 흐름을 막아야 된다고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중후한 일본의 고전적인 양식미를 살린 영화가 만들고 싶어지더라. 동시에 일본관객에게 이런 양식미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바람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츠마부키의 인기에 힙입어서라도 소개가 됐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 이름과 내 전작들을 통해서라도 한국에서 개봉했으면 좋겠다. 일본에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 <봄의 눈>에 잘 담겨져 있기 때문에 한국관객들이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생기길 바란다.
최: 빠른 시일내에 한국에 또 방문할 계획이 있는가?
이사오: 일본문화청이 한일문화교류를 많이 추진하고 있다. 그 교류의 일환으로 올 11월 달에 메가박스에서 ‘일본영화제’가 열린다. 거거서 예전 일본 작품들을 소개하는데 그 프로그램 안에 <고> 바로 다음에 찍었던 오리지널 작품인 <로큰롤 미싱>이 상영한다.
아마 당신이 좋아할 것 같다(하하). 그러니 꼭 봐라. 나도 그 행사에 참여하니 그때 영화를 보고 또 얘기를 해보자.
최: 오호~ 그런가! 꼭 보겠다.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감독님 패션 감각이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사오: 정말?(하하) 감사하다. 한국의 김지운, 허진호 감독도 옷을 참 잘 차려입고 다니는 패션리더더라. 나는 아직 그분들에 비해 옷 입는 센스가 미흡하다.
최: 아니 이런데서 겸손을 떠시나니^^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권영탕 카메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