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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의 반란.
런딤 : 네서스의 반란 | 2001년 10월 30일 화요일 | 박우진 이메일

스무 살을 훌렁 넘긴 어느 날, 모 과목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과제를 받아 들었다. 제출할 리포트를 위해 곰곰 ‘과거’를 되짚어 보다가, 내 어린 기억 속에서 방글방글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 다니는 예쁜이들이 모두 해외에서 입양되어 왔다는 사실을 불쑥 깨달았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들은 서양 어디쯤에서 흘러들어 왔다 치고, 까만 머리들-갈색 머리도 봐준다-만이라도 쏙쏙 추려 보았으나 낭패였다. 대부분 동해 건너 섬나라에서 태어난 고 녀석들은 훌쩍 이름만 바꿔 우리 나라 바보 상자로 줄줄이 팔려왔을 따름이었다. 머리 구석구석을 샅샅이 찔러봐도 튀어나오는 우리 토종 아이들은 그 이름도 정겨운 하니, 까치, 둘리 뿐이었다.

TV앞에 쪼로록 모여 앉은 우리 아이들이 피카츄, 라이츄, 그리고 차마 이름도 외우지 못할 만큼 많은 포켓몬들과 디지몬들에게 꺅꺅 열을 올리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나 어릴 때처럼 아직 ‘한국 TV 애니메이션’은 실종 상태인가도 싶다.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TV애니메이션이 극장 애니메이션의 기반 역할을 담당하는 해외의 전례를 살펴볼 때,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 또한 짙은 안개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가 한다. 디즈니 만화 영화가 전부였던 우리 극장가에 이제야 저패니메이션의 고전이 하나 둘 끼어들고, 극장에 간판을 달았던 우리 극장 애니메이션이라곤 고작 ‘블루시걸’ 밖에 떠오르지 않으니 못내 안타까운 노릇이다. 먼저 출발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저만치 질주하는 일본과 미국, 유럽 애니메이션을 따라 잡으려면 힘겨운 도약이 필요할 테니 넓은 아량으로 다독여주자 해도 우리 애니메이션은 분명 발전의 기미가 너무 미약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렇게 황량하던 우리 애니메이션이 꿈틀꿈틀 약동하려는 몸짓을 보인다. 그 신호탄으로써 11월 10일 개봉하는 [런딤:네서스의 반란] 에게 자못 기대가 크다. [런딤:네서스의 반란]은 한국과 일본에 동시 방영되었던 TV시리즈 [런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우리의 탄탄한 기술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 애니메이션은 주로 외국 애니메이션의 하청작업으로 단련된 터라,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면모는 강하나, 총체적인 면모는 약하다고 알려져 왔다. [런딤:네서스의 반란]은 이러한 우리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얼마간 잘 살린다. 즉, 캐릭터들의 유연한 동작과 입체감이 살아있는 생생한 배경에 비해 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다소 단순하고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물론 TV를 극장으로 옮겨놓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압축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주 타겟을 아이들로 설정한 듯, ‘짱이야’와 같은 은어를 차용하고, 아이들용 유머를 구사하는 점도 슬몃 거슬리긴 하나, 이런 흠을 물고 늘어져 애니메이션 자체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런딤:네서스의 반란]이 상영되는 한 시간 반의 시간은 역동적이고 화려한 신기술에 뿌듯한 감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기술은 어쩌고 저쩌고, 장황하게 늘어놓기엔 나의 ‘고난도 기술에 대한 지식’이 너무 얕다는 사실이 애석할 따름이다. 다만 나와 같이 평범하다 못해 무식한 관객의 눈에도 런딤은 ‘멋진’ 영상이었다는 것에 자족한다. 또한 플롯 상에서 상투적인 선과 악의 대립구도뿐 아니라, 선과 악의 간극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려는 시도가 눈에 띄는 것을 높이 사고 싶다.

[원더풀 데이즈], [마리 이야기], [아크]등 [런딤:네서스의 반란]에 이어 속속 우리에게 선보일 작품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우려 섞인 기대를 하게 된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다양하고 풍성한 가지를 뻗어나가 한 그루 아름드리 나무로 하늘을 찌르기 위해서는 관객의 관심이라는 비옥한 양분이 절실할 텐데 말이다.

3 )
ejin4rang
반란이 시작된다   
2008-10-16 17:03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08
kangwondo77
한국 애니메이션의 반란   
2007-04-2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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