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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짚어주마! ‘오로라공주’ 리뷰
살인자의 윤곽은 뚜렷한데, 장르는 흐릿하다. | 2005년 10월 20일 목요일 | 최경희 기자 이메일

※ 이 글은 보는 입장에 따라 ‘스포일러’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한 여자가 백화점 화장실에서 우연히(?) 목격한 아동폭행. 그 여자는 아이를 때리는 의붓어미를 가느다란 송곳 비슷한 것으로 무참하게 난도질해 죽여 버린다. 잔혹한 살해 장면의 잔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가운데 살인자는 ‘오로라공주’ 스티커만 범행 장소에 남겨둔 채, 다음 살해 장소로 빠르게 이동한다.

(첫 번째) 살인과 (두 번째) 살인 사이에서 명확한 동기와 분위기 조성도 없이 다섯 번째 살인까지 순식간에 해치운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단점이 미흡한 드라마인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범인 ‘정순정’(엄정화)의 감정과 살인의 곡절을 꽤나 진중한 드라마로 풀어낸다.

여배우 출신 감독인 방은진의 <오로라공주>는 ‘살인’에 방점을 찍기보다 한 여성의 내면의 파장을 확장해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살인의 ‘동기’를 역으로 끌어내는 구조로, 보편적 스릴러 장르의 공식을 배반한다. 살인자의 정체를 처음부터 드러낸 과감한 시도 또한 장르의 배반 중 하나 일 것이다. 이로 인해 영화는 연속적인 살인 장면을 연출함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상실한다.

이 용감한 시도가 무모한 시도로 여겨질 때, 카메라는 모든 미장센을 포기하듯 범인 ‘정순정’에 집착한다. 그녀의 트라우마가 서서히 형체를 갖출수록 스쳐지나간 피해자들의 입체성도 살아난다. 방금 전에 정순정의 손에 죽어간 이들의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의도적 장치는 사실 영화 안에 따로 없다. 그런데도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범인의 행적을 정면으로 집요하게 쳐다보는 전체적인 연출스타일 때문이다.

즉, 카메라가 살인자와 범행 동기를 극 중반까지 완전 노출함으로써 영화는 미스터리를 제껴(포기)버린다. 대신, 살해된 어린 딸에의 복수를 감행하는 정순정의 ‘분노’에 초점을 맞춰 모든 사건과 영화적 장치들을 차례차례 등장시킨다.

결국, 주인공의 내면이 가시적 이미지로 구체화될수록 관객들은 긴장감보단 살인에 동참하는 동료의식을 얻어낸다. 이걸 토대로 스릴러라는 외피는 자연스럽게 벗어던지면서 드라마가 극의 주조를 이룬다. 여기서 얻어낸 복수의 타당성과 새끼를 잃은 어미의 슬픔이 플래시백으로 인해 일종의 ‘죄책감’으로 전이되는 순간, 준비된 ‘반전’은 적절한 타이밍을 장식한다.

살인의 동기와 캐릭터 설정만 보자면 <오로라공주>는 ‘여성’영화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수를 내포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리하게도 ‘방은진’ 감독은 도시에 살면서 그 도시의 음험함에 몸을 숨기는 현대인을 피해자로 설정하고 모성을 응징의 보편적 ‘잣대’로 드리워 상업영화로서 안착하는 길을 택했다.

정순정의 감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에서 또한 방은진 감독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살인의 ‘동기’로써의 모성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장르영화의 규칙을 과감히 어기거나 적절히 지켜가면서 얻어낸 상업적 ‘재미’는 사실, 감독이 영화적으로 대단한 모험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살인자와 형사 간의 추적과 대결이 겉돌았다는 점에서 영화가 내세운 스릴러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게 드러난다. 드라마의 부각은 ‘정순정’의 살인 행각에 무게감을 실어주지만 상반되는 두 개의 장르가 어느 한쪽에 귀속되지 못한 채, 마찰을 일으키고 있음을 노출시키는 약점이기도 하다

영화의 흐름과 감정의 전달에만 급급해 스릴러와 드라마의 효과적인 융합을 실험해보지 않은, <오로라공주>는 방은진 감독의 문제적 데뷔작으로 평가받지 못할 듯하다. 반대로 정순정을 연기한 ‘엄정화’에겐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적인 작품으로 작용할 것이다. 감독과 배우의 차이는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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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011
영화보고난후 어깨가 아팠다..ㅡㅡ^
난..대략 만족인데...시사회로봐서 그런가.....   
2005-10-25 16:15
ddongwoo
위보다 아래가 더 재미있네   
2005-10-24 16:48
forceahn
시사회 보고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방은진감독님 공부 많이 하셔야 겠습니다. 한국관객 수준을 어디까지 끌어내리시렵니까!   
2005-10-21 16:44
magnifico
말씀드리지만 영화는 내가 보는 거지 결코 남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경계선에 안에서 타인에게 최대한 완곡하게 영화의 전체에 대한 이미지와 제 생각을 적당히 포장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앞으로 좀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넓은 시선을 갖은 기자가 되도록노력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좀 더 영화에 대한 깊은 의견이 필요하시다면 메일주세요.   
2005-10-21 14:12
magnifico
오로라공주는 외관상 분명 스릴러 장르이지만 감독은 주인공의 심리와 주제를 부각시키는 적당한 선에서 스릴러의 관습을 착용했을 뿐, 영화의 힘은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세세하게 부분으로 나누면 영화는 분명 잘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소통하려는 방식이 포괄적이라면 기자로서 저는 ‘오로라공주’의 가장 큰 물줄기에 대해 써야 합니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직업상 영화의 전체를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감독이 장르에 대한 이해부족이라는 제 의견은 ‘오로라공주’의 초반설정만 보면 스릴러적인 관습이나 변칙을 더 사용해도 되는데 드라마에 너무 치우친 연출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2005-10-21 14:12
magnifico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언제나 이런 피드백이 되는 커뮤니티를 원했는데 모처럼 만에 제 글에 대한 책임을 느끼겠네요. 그러나 저는 ‘오로라공주’를 여성영화로 보지 않습니다. 왜냐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모성’이 굳이 남성과 여성의 성차만 가지고 구분되는 감정(본능)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단지 즉발적으로 가장 그 복수에 타당성을 얻는 대상을 모성하면 떠오르는 여성(엄마)으로 설정했을 뿐, 영화가 말하는 주제가 새끼를 잃은 어미의 분노가 아니라 현대인의 이기심이기 때문입니다. 제 글에선 분명 그 점을 강조한 걸로 압니다. 그리고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수긍할 수 없습니다. ‘스릴러’는 카메라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관객과 감독 그리고 제3의 시선(카메라)의 권력싸움에서 획득되는 ‘긴장감’을 우선으로 하는 장르입니다.   
2005-10-21 14:11
inqbus
장르에 대한 잘못된 규정 하나만 지적하죠.

평론의 저자는

"카메라가 살인자와 범행 동기를 극 중반까지 완전 노출함으로써 영화는 미스터리를 제껴(포기)버린다." (중략)
"결국, 주인공의 내면이 가시적 이미지로 구체화될수록 관객들은 긴장감보단 살인에 동참하는 동료의식을 얻어낸다. 이걸 토대로 스릴러라는 외피는 자연스럽게 벗어던지면서 드라마가 극의 주조를 이룬다." (중략)
"살인자와 형사 간의 추적과 대결이 겉돌았다는 점에서 영화가 내세운 스릴러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게 드러난다."

이라고 주장합니다. 글의 저자는 노먼 베이츠가 시체를 얼음창고에 감춘 뒤, 집에 찾아온 경찰이 '피묻은 얼음' 한 움큼을 집어들때 '스릴'을 느끼지 못했나요?   
2005-10-21 09:36
inqbus
방 감독의 연출에서 물론 미흡함은 엿보입니다. 바로 현영의 얼굴에 석고를 부어 살인을 할 때 관객들에게 정순정의 게임에 동참할 충분한 여유를 주지못하고 있하고 있죠. ('편집을 통한 스릴의 고양'의 가장 극적인 형태가 '양들의 침묵'의 초인종 시퀀스일 겁니다)
공포장르와 마찬가지로, 스릴러장르의 주체/카메라의 시선은 종종 전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스릴러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평론의 저자인 듯 싶군요.

뱀말
제가 보기에 오로라공주는 '여성'영화의 함정(?)에 빠질 위험수를 내포한 영화가 아니라 '여성'영화입니다.   
2005-10-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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