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잠들지 못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창녀 ‘스티비’와 공항 레스토랑의 ‘마리’만이 위로의 대상이다. 잠들지 못했기에 그의 외형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다. 불안함은 그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좀 먹는다. 그리고 나타나는 한 남자 ‘이안’은 그를 혼돈의 끝으로 몰아붙인다.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아슬아슬함은 직장에서도 외톨이로 만드는 한편, 직장 동료의 팔을 절단케 하는 사고를 일으키며 더욱 날카롭게 그을 옥죄어 온다. 그가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고 그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제목 <머시니스트>는 기계공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에 보여지는 화면은 척박하고 건조하며 또한 혐오스러울 정도로 기계적이다. 어떤 색깔도 제대로 숨쉬지 못하고 탈색되고 낡은 느낌이 가득한 영상 속에 극도로 야윈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직업은 머시니시트. 곧 기계공이다. 푹 파여진 눈과 피골이 상접한 몸. 등뼈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도 공포다.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은 <머시니스트>를 위해 8주만에 30KG을 감량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아메리칸 사이코>, <이퀼리브리엄> 등에서 완벽하게 만들어진 몸을 과시했던 그의 육체는 더 이상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손을 툭 대면 부러질 것 같은 이는 연약함을 넘어선 히스테리다. 그가 보여주는 창백한 기계공의 모습은 현대인의 위태로움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현실의 공포는 분명 개인의 판타지를 만들어 낼 법하다. 그 판타지는 육욕과 타나토스 안에서 방황하기 마련이다. 그의 육체는 타나토스안에서 방황함과 동시에 유일한 해방구인 창녀 스티비를 통해 구원을 꿈꾼다. 유일한 소통은 그에게 있어 희망이 되며 끝내 현실로 돌아오는 결정적인 키 메이커 역할을 한다.
영화는 극도로 절제된 이야기와 감정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어디서 본듯한 설정은 그런 데로 잘 변주 되지만, 그만큼 이야기에는 힘을 주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나 스릴러하면 강력한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심리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어쩌면 감독은 처음부터 무엇을 감추려 한다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피 흘리는 냉장고와 메모지에 그려진 암호마저도 끝끝내 친절하게 설명하며, 영화는 열린 결말이 아닌 다소 차분한 마무리를 선보인다.
금속성 화면과 분위기는 스릴러의 구조를 따라 천천히 이동해가지만,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을 기대한다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이야기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기계공 ‘트레버 레즈닉’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크리스찬 베일’의 공포스러운 육체와 거기서 나오는 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감독이 보여주려는 것만 고민 없이 받아 들인다면, 나름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머시니스트>는 KBS와 단성사가 함께하는 프리미어 영화 이벤트 두 번째 개봉작이다. 지난 주에 공개된 <신부와 편견> 이후에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를 공중파와 스크린에서 동시에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의 특성상 공중파에서 만나는 것과 극장에서 감상하는 것은 분명 몇몇 장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영화 속에 등장하는 ‘제니퍼 제이슨 리’의 노출 신과 몇몇 끔찍한 장면들은 분명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만나든 그것은 관객의 자유지만, 이 같은 시도가 분명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