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의 외피를 지녔음에도 온갖 철학을 끌어들여 지구촌을 화끈하게 들쑤셨던 <매트릭스>의 신화가 어언 1년이 지났건만, 영화가 남긴 오만가지 후유증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이러한 시점에 키아누 리브스의 새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으니 당연 우리는 매트릭스의 네오를 떠올릴 수밖에 없음이다. 게다, 네오도 아닌 것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라니 이거 말 다했다.
영화를 만든 주최측 역시 요러한 분위기에 편승, 키아누 리브스의 후광을 등에 업고 영화의 기대치를 극대화시키겠다는 전략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고로, 당 영화 <콘스탄틴> 상당히 매트릭스적 인상을 풍긴다. 그렇다고 별다른 고민 없이 내놓은 작품이라 치부하시면 좀 섭섭하다. 나름대로 그것과는 별개로 또 다른 기운을 뿜어내는 영화적 구성이 존재하니까...
초반, 뭐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한 남자가 정말이지 허걱스럽게 차에 치이는 화들짝스런 장면으로 오프닝을 여는 <콘스탄틴>은 퇴마사 존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의 활약상을 담은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다. 검은 가죽코트대신 양복을 차려 입은 그는 지옥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자신의 팔자를 어케든 뒤바꿔보고자 백방으로 뛰어 다닌다. 지 분수도 모르고 속세에 나다니는 악마를 지옥으로 내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보기에는 혹은 결과적으로는 악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내고 세상의 질서를 수호하는 초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런 대의적 명분은 사실 콘스탄틴에게는 껍데기일 뿐 일신의 영달과 안위, 구원을 위해 도움 되는 일만 나서대는 안티히어로다.
“절대 악에서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희망!”이라는 멋들어진 슬로운 건과는 어울리지 않게시리 틈만나면 담배 꼬나무는 그 골초적 생활패턴으로 폐암을 선고 받는가 하면 착한 이들의 간절한 요청에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등 뭐 대충 얘의 스타일이 이러하다.
DC 코믹스의 '헬 블레이저'를 원작으로 한 <콘스탄틴>은 주인공의 직업이 퇴마술사라 그런지 <엑소시스트>에서 빌려온 게 아닌가 싶은 대목도 존재한다. 악의 공간과 지옥도를 드러내는 데 있어 그 음침한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자 누아르적이며 표현주의적인 기법도 등장한다. 나날이 진일보하는 시각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이 같은 설정을 구체화함에 따라 <매트릭스> <엑소시스트> <블레이드> <미이라> 등 묵시록적 대결을 그린 영화들은 <콘스탄틴> 관람 중 자연스레 포개진다. 그럼으로써 매 장면 심혈을 기울여 세공한 흔적이 역력함에도 독창적이지 못하고 본 듯한 낯익은 이미지들로 영화의 무게감과 재미는 떨어진다.
대신, 천사 가브리엘(틸다 스윈튼)과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필의 악마 루시퍼(피터 스토마레)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리적 비중으로 따지자면 그리 크지 않지만 양성적 이미지의 천사와 기이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악마 루시퍼의 캐릭터는 기묘하게도 <콘스탄틴>에 B급 정서를 불어넣으며 영화에 또 다른 재미를 던져준다. 더불어 콘스탄틴이 악마를 처단하고자 마지막까지 아껴둔 비장의 무기 일명 성스러운 총!, 그러니까 동네 문방구에서 팔면 딱 좋은 심히 물총스럽기 짝이 없는 십자가로 만든 권총은 위 캐릭터와 함께 키치적 감성을 더한다. 언뜻 심오해 보이지만 별 것도 아닌 영화의 메시지 역시 다르게 보면 이와 호응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바로 요러한 점이 당 영화의 매력이자 의외의 수확이다.
그러니까 결국 <콘스탄틴>의 진짜 볼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돈 들인 티 팍팍 나는 시각적 효과도 효과지만, 돈 별반 안 들인 장면과 설정 그리고 조연급 배우에게 있으니 그 쪽에 맞춰 관람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