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다리 위에서 사랑에 눈물짓던 흑백필름 속의 ‘비비안 리’보다 <아비정전>에서 1분의 사랑을 영원으로 기억하고 기다리던 ‘수리진(장만옥)’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세월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수리진이 ‘장만옥’이었기 때문이다. 낡은 TV앞에서 상상을 즐기던 소녀가 이제는 성장해 적금통장을 ‘꿈’이라고 우기며 살아가는 그저그런 여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만옥은 소녀의 꿈을 환기시키는 존재이다.
길고 가는 목선, 좁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몸의 곡선은, 한치의 여유도 없어 보여 그를 불투명한 21세기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왕가위 감독은 <폴리스 스토리>등 다수의 영화에서 마론 인형처럼 소비되던 장만옥에게서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사랑의 이미지를 발견하였다. 올해 나이 40살, 여전히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는 마땅한 미사여구조차 찾아보기 힘든 그에게 사랑을 ‘각인’하는 <영웅>의 ‘비설’, <화양연화>의 ‘리첸’이 전부일까?
<클린>은 20년간 매혹의 여신으로 추앙받는 장만옥의 ‘화답’이다.
올리비에 아싸야스 감독은 <클린>을 통해 장만옥의 이미지를 재발견한다. 사랑을 ‘각인’하던 21세기의 아이콘인 그에게서 마흔이라는 세월의 숫자만큼 관록이 베어 나올 수 있도록 ‘모성’을 덧칠한다. 리와 에밀리(장만옥 분)는 퇴물 락가수다. 둘 사이의 아들은 시부모에게 맡기고 리와 에밀리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재기의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절망과 시련뿐이다. ‘마약’은 리와 에밀리를 이럴 때마다 위로하는 유일한 처방전이지만 에밀리는 마약으로 인해 결국 리를 잃고 아들마저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성이 절망과 마약으로 찌든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새 삶을 찾기 위해 파리, 런던, 샌프란시스코를 ‘유랑’한다.
장만옥의 전남편이 감독한 <클린>은 오로지 ‘장만옥’만을 위한 영화라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화면에 비쳐지는 장만옥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니트 모자를 깊게 눌러쓴 초췌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접근하기 힘든 매혹의 향기를 뿜어낸다. 3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에밀리 역은 영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살았던 그에게 딱 맞는 역이었을 것이다. 힘없이 내뿜는 담배연기를 기대어 아스라이 화면에 걸쳐져 있는 그의 고혹적인 옆선은 모성의 희망으로 치환된다.
달리 말해, <클린>에서 장만옥을 제외하곤 볼 것이 전혀 없다. 오로지 그만을 위해 만든 영화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형식 안에서 의미들은 도시의 이미지들을 빗대 도식화된다. 물론, 에밀리의 직업이 가수이기 때문에 풍성하게 제공되는 음악들은 우리의 귀를 애무하지만 이것도 에밀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관습적인 쓰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갱생의 의지와 희망은 도시를 유랑하는 에밀리의 처지처럼 적재적소에 펼쳐지고 음악은 복잡다단한 그녀의 심리를 관객에게 대신 전해준다.
그러나 아들 때문에 새로운 삶을 꿈꾸고, 다시 찾은 음악으로 인해 희망을 품은 에밀리의 노래와 미소는 장만옥 그의 것이기 때문에 피날레를 장식하는 ‘샌프란시스코’ 전경이 근사하게 기억 될 것이다.
p.s) 시아버지로 나오는 ‘닉 놀테’의 연기는 가히 환상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목소리에 담아낼 수 배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닉 놀테’는 그 흔치 않는 배우 중에 한 명이고 어쩌면 ‘유일한’ 배우일지도 모른다. 에밀리의 친구로 나온 ‘베아트리체 달’은 여전히 완숙한 섹시미를 자랑하지만 앞 이빨의 벌어짐이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