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열린 칸영화제는 역대 가장 도발적인 영화제였다고 회자되고 있다. <화씨9/11> <올드 보이> 등을 비롯해, 영화제는 충격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역시 시작부터 가장 주목받았던 칸의 결정은 개막작으로 선정된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나쁜 교육>일 것이다. 최근 10년간 칸 개막작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나쁜 교육>은 전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감독의 내공과 통찰이 더욱 깊어졌음을 보여주는 ‘도발의 완성작’이다.
<나쁜 교육>은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닌 이나시오와 엔리케를 중심으로 사실(추억)과 허구(시나리오)가 얽히며 다층적인 구조로 진행된다. 멜로와 누아르, 현재와 과거, 사실과 허구가 자유분방하게 섞인 독특한 구성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고 영화는 욕망에 휩싸인 네 남자,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였다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그들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에 못지 않게 도발과 서정이 공존하는 영상 역시 볼거리. 물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답게 음악 역시 이야기와 영상의 조력자로만 만족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음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함께 한 첫 작업이었던 <내 비밀의 꽃> 이래로 알모도바르의 모든 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Alberto Iglesias)가 맡았다. “알베르토는 하는 영화마다 내게 놀라움을 선사해 주는데, 그가 창조해낸 음악이 아닌 어떤 다른 음악이 사용된 <나쁜 교육>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라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말처럼 <나쁜 교육>의 음악들은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 욕망, 질투, 후회 등 복잡하고 은밀한 감정을 관객들이 흡수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장치가 된다.
가장 주목받는 곡은 이나시오가 마놀로 신부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Moon River’. 아직 변성기를 맞지 않은, 중성적인 미성을 띈 소년의 청아한 목소리는 평온하지만, 아름다운 노래 속에는 감춰진 욕망의 긴장감이 실려있다. 특히 ‘Moon River’는 4번의 오스카와 20번의 그래미 수상 등의 경력을 지닌 위대한 영화 음악가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1924-1994)의 곡으로 1961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부른 이후 현재까지 가장 아름다운 영화 음악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는 곡. <나쁜 교육>에서 새롭게 만나는 ‘Moon River’ 역시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필청곡이다.
<화양연화>에서 허락되지 않는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모습 위로 흐르던 Sole의 황제 Nat King Cole의 ‘Quizas, quizas, quizas’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여장 가수로 분한 이나시오가 부르는 ‘Quizas, quizas, quizas’ 역시 반갑지 않을 수가 없을 것. 안타까운 사랑의 슬픔 대신 관능적인 욕망이 가득한 새로운 매력을 접할 수 있다.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에 마놀로 신부가 노랫말을 붙여 이나시오에게 부르도록 한 ‘Jardinero(정원사)’도 빼놓을 수 없는 곡. 스스로를 정원사에, 소년을 꽃에 비유한 신부가 자신의 욕망에 도취되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신부의 위선과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년의 순수함이 대비되는 장면이다. 이 밖에도 장엄한 오케스트라와 미사곡(성가대곡)들은 모두 종교적 교육의 끔찍한 기억과 연관되며, 영화의 누아르적 스타일을 살리고 있다.
한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나쁜 교육>은 ‘관능적 열정으로 점철된 퍼즐’같은 영화 이다. 그리고 이 도발과 관능이 가득한 영화의 O.S.T는 그 영상만큼이나 강하게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끌어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