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아이덴티티>는 영화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본’이란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을 주축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영화다. 여기에 그의 과거가 일급 킬러라는 사실이 더해지고, 화끈하지는 않지만 한 여성과의 교감도 이루어진다. 익숙한 이야기 대로라면 그네들은 침대 속에서 크레딧 위를 뒹구는 것으로 막을 내렸겠지만, 놀랍게도 <본 아이덴티티>는 활짝 웃음과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로 이야기를 종결한다. 너무도 건강한 나머지 허탈하다.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다. 그리고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2년 뒤. <본 슈프리머시>가 나왔다. 주인공과 등장인물이 같다. 그러나 상황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쫓겨 다니면서 ‘아이덴티티’를 찾으려 노력했던 주인공은 이번에는 ‘슈프리머시’한 위치에서 상대를 리드하는 입장을 보이며 새로운 국면을 선보인다. 전편이 과거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면, 이제는 능동적으로 과거에 맞서 ‘제이슨 본’ 이라는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다. 전편에서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던 반면 오히려 이제는 홀홀 단신으로 적들을 상대한다.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그러한 변화가 오히려 영화를 신선하게, 재미있게, 더욱 신나게 만든다. 놀랍게도 쫓기는 상황이 아니라 쫓아가는 상황이 오히려 긴장감 넘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전편에서도 그랬지만, <본 슈프리머시>에는 최첨단 장비가 등장하거나 화려한 폭파장면 과장된 액션 등이 조금도 등장하지 않는다. 현대식 무기라고는 ‘총’이 전부다. 화려한 BMW 대신에 노란색 택시가 등장하고, 수다스럽게 자신을 과시하기 보다는 짧은 말로 상대를 압도한다. 그 눈빛! 카리스마 넘치는 맷 데이먼의 연기는 단연코 최고다. 지적이며 겸손하고 강하면서도 인간적인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짐짓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느끼한 포마드 기름이 뿌려진 ‘제임스 본드’형의 매력이 아닌 담백하면서도 화끈한 그래서 더욱 탐나는 매력이 ‘제이슨 본’에게서는 흘러나온다. 아니 넘쳐 난다.
화려한 특수효과나 탄성을 자아내는 첩보 영화 특유의 오버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 <본 슈프리머시>는 전편보다 더욱 많은 볼거리로 눈을 즐겁게 한다. 인도에서 이탈리아로...베를린에서 모스크바까지. 일반적인 영화에서 보여지는 도시 특유의 들뜸 보다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현실적인 모습은 영화 <본 슈프리머시>가 지닌 또 다른 미덕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적당히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선사하는 핸드 헬드 촬영 기법은 마치 내가 ‘본’이 되었거나 혹은 내가 ‘본’을 쫓아가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영화에 몰입을 유도한다. 이는 ‘도그마 선언’의 과장된 ‘들고찍기’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테크닉이다.
<본 슈프리머시>는 로버트 러들럼의 첩보소설 ‘본 씨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베스트셀러를 모태로 한다는 것은 그만큼 탄탄한 이야기 구성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전편의 완성도를 뛰어 넘은 속편은 3편의 전망까지도 밝게 한다. 완벽하게 색다른 캐스팅을 선보인 ‘맷 데이먼’의 선택은 진정 탁월했음이 입증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지적이며 평범한 옆집 소년 같은 이미지는 <본 슈프리머시>가 왜 ‘슈프리머시’한 첩보영화 일 수 밖에 없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지금까지의 허무맹랑한 첩보 영화는 잊어라! 이제 더욱 더 현실적이면서도 지적이고 그래서 너무나 특별한 ‘제이슨 본’이 스크린을 압도하리라. 완성도 면에서 재미 면에서 <본 슈프리머시>는 조금도 빠지는 부분이 없다!
마지막으로 <본 슈프리머시>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본 아이덴티티>를 볼 것을 권한다. 특히 <본 아이덴티티>가 그저 그런… 솔직히 별로 재미 없게 느껴졌던 이들에게는 필수적으로 봤으면 좋겠다. 영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발전해가는 지가 온 몸을 타고 흐르며 엔도르핀을 샘솟게 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이슨 본’의 팬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본’씨리즈는 가장 고급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첩보영화 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