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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여우
천년동안 ‘순결’한 여인네 | 2004년 7월 6일 화요일 | 협객 이메일

한국 역사속의 영웅은 박혁거세 신화만 보더라도 탄생부터 예사롭지 않게 묘사된다. 때문에 역사는 언제나 스펙터클로 무장한 남성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반면 우리네 역사 속에서 자타가 인정한 대부분의 훌륭한 여인네들은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철저히 남성의 잣대로 점수 매겨져 그려진다.

정조를 지킨 청상과부,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 또는 남자들보다 출중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발산한 곳이 없어 화류계로 뛰어든 기생들......
그녀들이 낡은 국사책 안에서 아직도 빛을 내는 이유는 우습게도 동시대의 남성들에게 보낸 변치 않는 ‘사랑과 희생’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사에 무식한 필자의 궤변이라도 ‘현모양처’의 상징, 신사임당을 생각해 보면 그리 엉뚱한 논리는 아닐 듯 하다.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제패니메이션<천년여우>도 ‘사랑’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아름답고 신비한 인생의 주인공이 된 여성이야기 때문이다.
제목만 봐서는 나이 천살 먹은 구미호가 나오는 영화인 듯하지만 여기서 ‘여우’는 여배우의 줄임말로 쓰였다. 주인공 ‘후지와라 치요코’는 1923년 관동대지진 속에서 태어난다. 영웅탄생신화처럼 특이한 출생만 보더라도 그녀가 예사롭지 않은 삶의 주인공임이 예견될 것이다. 치요코는 신비한 탄생과는 달리, 여성이어서 그런지, 시대를 개혁하는 영웅으로 살지 않고 시대를 대변하는 ‘영화배우’의 길을 걷는다.
혼란한 일본의 근대사를 관통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우연히 만난 미지의 남자와의 ‘사랑’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때문에 ‘치요코’라는 여성은 기존의 애니메이션 인물성격과는 거리를 둔다. 결국 치요코는 실제의 과거 역사에서 우리가 기억하던 훌륭한 여인상과 닮은꼴을 이뤄 허무맹랑한 순도100% ‘소녀성’마저 극히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일종의 회고담 형식인 <천년여우>는 과거와 현실, 실제와 영화, 영화속의 영화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치요코의 애절한 숨바꼭질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30년 전 은퇴한 늙은 여배우의 신비한 사랑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마저 모두 ‘사랑’을 찾기 위한 실제의 여정처럼 묘사된다.

애니메이션은 자체가 ‘판타지’로써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덧셈’의 과정이다. 그러나 감독 곤 사토시는 ‘무(無)’에 ‘무(無)’를 더함으로써 애초의 판타지에 실사영화 같은 리얼리즘을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곤 사토시는 다큐멘터리 감독 켄야를 등장시켜 스크린과 실제 관객사이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낯설음을 대리체험하게 만든다. 켄야 덕에 관객은 다소 어렵게 보이는 감독의 실험정신에 함몰되지 않고, 치요코의 사랑이야기에 쉽게 몰입하게 된다.

<천년여우>는 미야쟈키 하야오를 필두로 한 ‘지브리스튜디오’와는 다른 제패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갑자기 은퇴해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여배우 ‘하라 세스코’를 모델로 한 치요코와 그녀의 사랑은 그래서 실사영화 못지않게 리얼리티하게 보인다. 그러나 지브리의 여성들보다 더 순종적이고 과잉 표현된 치요코의 소녀성은 일반극영화내지 역사책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훌륭한 여인네들의 모습을 약간 변형 답습한 꼴이다. 물론 이점 때문에 <천년여우>가 ‘만화영화’가 아닌 그냥 ‘영화’로 느껴졌지만 말이다.

<퍼펙트 블루>부터 최근작 <도쿄대부>까지 곤 사토시 감독의 새로운 시도들은 애니팬들에게는 멈출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순수하고 영원불변한 사랑의 찬가와 그 속에서 자아를 성장시키는 치요코는 실사영화에서 너무 많이 접해본 모습이어서 작가적 실험에 비해 구시대적인 인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캐릭터 성격부터 이야기 진행과정마저 일반영화와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아니다. 단지,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실사영화의 전형화 된 ‘영웅서사’마저 차용하여 애니메이션 특유의 창조성을 잃어버리기에 하는 소리다.(여성일 경우 사랑의 완성으로 캐릭터의 생명력을 부여받음)

치요코의 변치 않는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하면서도 그녀의 ‘소녀성’이 왠지 성적인 ‘순결’을 강조하는 남성들의 판타지로 보여 불편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가 여성의 미덕이라고 오인 받고 있는 기다림과 희생의 상징인 ‘순결’이 아닌 말 그대로 ‘순수’를 상징하는 열쇠이길.....

4 )
ejin4rang
이쁘네요 그림이   
2008-10-15 16:46
callyoungsin
순수함을 상징하는... 아주 아름다운 애니   
2008-05-16 15:05
qsay11tem
작품성이 좋아 보이네삼   
2007-11-23 14:19
js7keien
추구할 수 없었던 그는 정녕 평생을 두고 쫓아다녔어야 할 이상형이었단 말인가?   
2006-10-0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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