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삼킬 듯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수마, 그리고 지진 화산폭발 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재앙은 너무 거대하고 스펙터클하다. 그렇기에 그러한 재앙에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가장 감동적인 휴머니티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수법일 것이다. 한계를 극복 해내는 휴먼 스토리는 비단 재앙 영화 뿐 아니라 모든 매체에 있어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최고의 소재가 아니던가.
이러한 재앙영화에 있어서 영화 작가가 주의해야 할 점은 제한된 러닝타임동안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다른 장르의 영화에 비해 적다는 점일 것이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불길을 보여주고 나면 등장인물의 개개인의 배경이나 이력, 그리고 멜로라인과 같은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표현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 불길에 그런 소소한 감정의 교감은 묻혀버릴 수 밖에 없다. [분노의 역류]가 대성공을 거둔 후 화재영화의 전범이 된 사례와 최근 개봉한 [싸이렌]이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사례가 바로 이러한 점을 인식했는 지 혹은 간과했는 지의 결과에 따른 극명한 차이점이 아닐는지... 화마의 재앙에 맞서는 형제간의 우애라는 단촐한 스토리라인만을 가지고 있는 [분노의 역류]와 친구의 우정, 라이벌 의식, 멜로, 과거의 상처 등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혼재 해 있는 [싸이렌].
그러한 면에서 [리베라 메]는 많은 스타급 배우가 포진해 있지만 그들 각각의 내면의 세계를 지지부진하게 설명하거나 하기보다는 '인간과 불과의 대결구도'라는 정석을 상대적으로 충실하게 밟아 나간다. (물론 그 스타급 배우들이 영화 촬영 전과 후의 몸값이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는 외부적 요인도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상식적인 화재 재연으로 입방아에 올랐던 [싸이렌]에 비하면 상당히 박진감 넘치고 리얼리티를 확보한 화재 장면도 성공적인 휴먼 드라마의 완성에 일조를 하는 편이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불꽃에 가리워져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정이라는 일상공간에서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가부장적인 폭력의 문제점에 대한 문제는 좀더 신중하게 다루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회적 하부구조에서 축적되기 시작하는 그 수많은 폭력들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거대한 불꽃의 은유를 통해 세상으로 쏟아져 내리는 그 비극을 오로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배경으로 대수롭지 않게 다루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없으나 불행한 방화범 차승원은 결국 정신이상자이자 정의를 실현하는 소방관들의 절대악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닐 뿐 더도 덜도 아니다. 특히 그의 극도로 과장된 연기는 보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다. (물론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연쇄 방화범역을 소화하려고 애쓴 그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
아무튼 제작비에 걸맞는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애쓴 제작진의 노력을 치하하며(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만큼 오락성에 대한 찬사가 제작의 노고에 대한 폄하라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사회의 폭력에 희생되어 불 속의 원혼으로 타오른 아동폭력과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고 싶다.
아울러 99년 6월,이 사회의 부패와 모순된 사회구조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된 씨랜드 화재의 스물 세 명의 어린이들도 영원한 안식속에 잠들기를. 영원히 누적되는 폭력의 구조가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리베라 메에서와 같은 비극이 종식될 날은 오지 않을런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