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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기생충
에이리언도 기생충이다 | 2003년 10월 9일 목요일 | 서민 이메일

딱 봐도 아니다 싶은 회충 암수 한쌍
딱 봐도 아니다 싶은 회충 암수 한쌍
“한 생물체가 다른 생물체의 체내, 체표에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서식하면서 영양물을 탈취하는 생활양식을 말하며, 서식처 및 영양물을 탈취해가는 생물을 기생체, 이를 제공하는 생물을 숙주라 한다”

기생충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생충’의 정의다. ‘영화 속의 기생충’에 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나니, 기생충의 정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라 자부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영화 중에는 기생충을 소재로 한, 아니 기생충을 등장시키기라도 한 영화는 없는 듯하다. 영화에 기생충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은 기생충의 삶이 단조롭기 때문일 것이다. 몸 안에 들어앉아서 알만 낳는데 무슨 색다른 게 있겠는가. 영화의 가장 큰 소재 중 하나인 ‘사랑’에 관해서도 기생충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다. 이것저것 다 따져보며 상대를 고르는 사람과는 달리, 기생충은 외모나 성격에 무관하게 관계를 맺으니까. 사마귀처럼 교미 중의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든지 하는 엽기성이라도 있어야 소재가 될 게 아닌가.

기생충이라 볼 수 있는 에이리언
기생충이라 볼 수 있는 에이리언
기생충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기억나는 게 없지만, 위의 정의에 따른다면 거기에 들어맞는 영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많은 관객을 모으며 4편까지 만들어졌던 <에이리언>이 있다. 먼저 만들어진 것은 분명 1편이건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2편이 먼저다. 그 영화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머나먼 혹성에서 대기처리장치 개발을 하던 기술자들로부터 연락이 두절되자 지구에서는 탐사반을 보내고, 리플리(시고니 위버)는 유경험자로 참가한다. 연구소에 도착한 일행은 기술자들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하고 아연해하는데, 시신으로 보였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뜬다. 그리고 말한다. “죽여...주세요” 순간 그의 배를 찢고 괴물 한 마리가 튀어나오고, 일행은 공포에 질린다.

영화 후반부에 안 사실이지만, 에일리언 암컷이 알을 낳으면 그 알에서 에일리언의 새끼가 튀어나오는데, 에이리언은 성숙한 개체로 자라기 위해 인간의 몸을 필요로 한다. 발육을 위해 숙주의 몸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에일리언은 기생충의 정의에 부합한다. 기생충과 다른 점은 숙주 바깥으로 나오면서 숙주를 죽인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기생충은 원래 인체 내에서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게 목적이다. 10미터에 달하는 광절열두조충이 별다른 증상 없이 인체 내에 들어앉아 있듯, 기생충으로서는 영양분과 서식처만 보장된다면 굳이 인류를 괴롭힐 마음이 없다. 그들의 목적은 그 안에서 열심히 생식을 해, 자손의 숫자를 늘리는 것뿐이다. 증상을 일으키면 약을 먹든 수술로 끄집어내든, 자신의 서식처가 위협받게 될테니까. 하지만 기생충으로 인해 증상이 생기는 일이 흔하고, 심지어 죽는 일까지 생기는 건 왜일까? 그것은 한 사람 안에 지나치게 많은 기생충이 살 때다. 인체에 무해한 밥도 많이 먹으면 배가 터져 죽을 수 있듯이, 기생충들이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증상이 생긴다.

무지막지하게 긴 광절열두조충, 이런 놈이 우리 몸 속안에....
무지막지하게 긴 광절열두조충, 이런 놈이 우리 몸 속안에....
1964년 10월, 회충이 S양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적이 있는데, 그때 S양의 몸에서 나온 회충의 숫자는 무려 1,063마리. 20-30센티짜리 벌레가 그렇게 많이 있는데 사람이 온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라리아같이 숙주에 치명적인 기생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을 공격하는 에일리언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기생충들은 평화를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니 밥 한숟갈만 더 먹으면 되잖아!”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기생충을 용납할 마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기생충에 걸리는 걸 일생 일대의 수치로 알고, 심지어 기생충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날 멀리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까. 후진국에 기생충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생충이 많다고 반드시 후진국은 아닐텐데, 우리 정부는 ‘선진조국’을 내세우며 대대적으로 기생충을 소탕했고, 그 결과 기생충 감염률은 크게 떨어졌다. 인구수에 비해 기생충이 지나치게 많았던 옛날에 비해, 기생충의 숫자가 어느 정도 줄어든 작금의 현실은 어쩌면 인간과 기생충이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 에일리언은 리플리 일행의 공격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지만, 기생충들은 지금도 “난 건강해”라고 외치는 사람의 몸 속에서 웃고 있을 텐데,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평화와 공존에 대한 열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본의 아니게 기생충에 비교된 아놀드
본의 아니게 기생충에 비교된 아놀드
꽃뱀의 등뼈에서 발견한 바로 그놈 스파르가눔
꽃뱀의 등뼈에서 발견한 바로 그놈 스파르가눔
그 당시에 본 <터미네이터>도 어떤 기생충을 생각나게 한다. 총, 칼, 각목 등 수많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목표물인 사라 코너를 향해 나아가는 터미네이터는 하얗고 긴 기생충인 스파르가눔과 많이 닮았다. 정력의 상징인 뱀을 먹으면 걸린다는 점에서 근육질인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비슷하고, 항체, 임파구 등 모든 방어막에 아랑곳하지 않고 위벽을 뚫고 뱃속으로 나가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점, 심지어 뇌까지 올라가는 저돌적인 모습이 어떤 장애물도 가리지 않는 터미네이터와 흡사해 보인다. 터미네이터가 분쇄기에 깔려 비참한 최후를 마치는 것처럼, 스파르가눔은 외과 의사의 수술에 의해 끄집어내 짐으로써 운명을 마감한다.

터미네이터와 스파르가눔을 연결시키는 게 좀 무리인 듯 싶으면, 최근 개봉되는 조폭영화들의 예를 들어보면 어떨까. 아무 일도 안하며 놀고먹는 사람을 우리는 ‘백수’라고 하지만, 간혹, 주로 그들을 비난하고자 할 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기생충 같은 놈아!”

양식을 축내긴 하지만, 백수는 숙주-부모님-에게 그다지 피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이 비유는 옳지 않다. 백수보다는 오히려 조폭이 기생충의 정의에 더 잘 들어맞는다. 조폭들은 생산적인 직장에 종사하지 않고 남의 돈을 뜯어 생활하며, ‘나와바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때로는 어여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갈등을 빚는 일도 있다. 기생충 역시 건설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우리 몸 안에서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같이 들어온 기생충들과 다투기도 하며, 암컷을 놓고 싸움질도 한다. 이쯤 되면 영화에 나오는 조폭들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기생충스런 조폭들
기생충스런 조폭들
조폭과의 공통점은 또 있다. <두사부일체>에 나오는 대화들을 보자.

깡무식: 형님, 윤동주 아십니까? 상두놈이 자꾸 윤동주를 얘기하는데 같잖아 죽겠어요.
계두식(정준호 분): 윤동주? 동동주는 아는데, 윤동주는 새로나온 술이냐? 한병 시켜줘!!

정웅인: 인터넷에다 카페를 하나 만들었는데...
정운택: 그래? 그거 우리 관할이냐?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아무튼 영화 속의 조폭들은 하나같이 무식하고, 머리를 쓰는 법이 없다. 기생충은 무식의 단계를 떠나서 아예 뇌라는 게 없다. 뇌가 없으니 고민도 없고, 그저 영양분과 편안한 서식처만 제공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요즘의 조폭 영화들이 조폭을 미화했느니 어쩌니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의 행태는 기생충과 다를 바가 없다. 성질이 안 좋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생충은 약에 아주 잘 듣는데, 조폭에겐 약도 없다. 대관절 이들에겐 어떤 약이 필요할까?

우좌지간,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고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영화와 기생충에 관해 이야기를 계속 해보도록 하겠다.

9 )
khjhero
으미..징그러라...   
2005-02-0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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