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다. 다 아빠 때문이다. 아빠한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걸 알고 엄마는 자살했고, 난 그후로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덜컥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아빠가 죽었단다. 나한텐 이미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진데 뭐. 근데 그게 아니었다. 의절한지가 벌써 언젠데, 빚이 몽땅 나한테 떠넘겨졌단다. 그 뿐이면 다행이게? 열 두 살 짜리 배다른 동생까지 내 몫이 됐다. 열두 살도 그냥 열두 살이 아니다. 얼굴만 보면 나보다도 형님이다. 생전 처음 본 내 동생은 조루도 아닌, 쾌걸조로도 아닌 조로(早老)증 환자였다.
형 쪽에서는 어린 나이에(?) 여자나 밝히고 형한테 딱꿍딱꿍 대드는 동생이 미워 수시로 머리를 쥐어박고 눈을 부라린다. 그런가 하면 희귀한 병 때문에 몸이 보통사람 4배나 빨리 노화하는 이 동생 역시 만만치는 않아서 형 못 알아듣는 수화로 몰래 욕을 퍼부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상대를 자기보다 더 배려하게 된 이 사랑스런 형제들은 서로를 단단히 끌어안는다.
그러나 <오! 브라더스>의 진짜 길떠남은 액면 그대로의 물리적인 길에 있지 않다. 이들이 처음으로 대면해 부대끼고 각종 해프닝을 겪으며 서로를 끌어안게 되는 극의 구조 자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형에게, 앞으로 살날이 그리 길지 않아 보이는 외로운 동생에게 각각 동생과 형을 찾아주는 여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도정이라 부를 수 있을 부분부분들이 간혹 매끈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들쑥날쑥 튀는 것을 제외하면, 이야기를 끌어가는 감독의 솜씨는 신인의 그것 같지 않게 노련하다. 이를테면 치밀한 서사시를 청산유수처럼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꾼보다는 웃음의 분위기를 미리 조성한 후 그걸로 먹고 들어가는 영악한 입담꾼 쪽. 청자를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데 있어 후자의 재능은 전자만큼, 간혹 전자 이상으로 중요하다.
전반엔 웃음, 후반엔 눈물을 기본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 브라더스>가 국내 주류 영화들의 흥행공식을 충실히 따른 영화라는 점을 눈치채기는 어렵지 않다. 심지어 차라리 조폭이 어울리는 악랄한 경찰이 등장, 힘없는 주인공들과 대결구도를 펼친다는 점까지 든다면 거의 영락없다. 하지만 영화는 애초 알려진 대로 조폭 코미디보다는 <레인맨>의 길을 따르며, 그 안에 품고 있는 포부 또한 소박하지만 단단하다. 즉 조로증 환자 봉구가 실상은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험악한 외모만을 보고 지레짐작해 벌이는 해프닝들을 충실히 웃음의 코드와 연결시키겠다는 것이 코미디로서의 <오! 브라더스>의 목표. 예컨대 봉구가 “아저씨, 학교 가고 싶으세요?”라고 을러댈 때, 채무자들의 귀에는 그 말이 “너 쇠고랑 차고싶냐? 죽을래?”로 자동 번역되어 들린다는 얘기다. 비록 무구한 봉구가 의미한 학교가 도시락과 급수대와 처녀선생님이 있는 액면 그대로의 학교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영화는 이 단순한 명제 하나로 제법 능숙하게 능청을 떤다. 외모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원숙한 소년이 술집 아가씨에게 귀여운(?) 흑심을 품어보고, 조폭이 차라리 더 어울려 보이는 악랄한 경찰이 등장하긴 하지만 <오! 브라더스>의 웃음은 따뜻하며 기분 나쁘지 않다. 어두워질 수 있었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동화의 필터를 덧씌운 듯 예쁘장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 천진난만한 열 두 살 짜리 악동 봉구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 이범수와 차분히 형 상우를 그려낸 이정재의 화학작용은 퍽 느낌이 좋다. 한편 악랄한 풍속계 경찰 정반장을 연기한 이문식을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도 돋보이는 부분. 어떤 종류의 길떠남을 사람들은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이라고 부른다. 어차피 제자리라고 해도, 결국 변하는 건 마음. 치열하기보다는 느긋한 <오! 브라더스>가 전해주는 감흥도 그런 종류의 훈훈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