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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너 금발이 아니니?, ‘금발이 너무해2’
이영순 칼럼 from USA | 2003년 7월 18일 금요일 | 이영순 이메일
그녀의 직업은 변호사, 본업은 삽질과 닭짓. 그녀는 섹시한 백치미의 마릴린 몬로와 바비 인형에 힐러리까지의 삼인 합체물이다. 한 마디로 텅빈 쭉쭉빵빵 공주과다. 그녀의 친구는 빨강, 하얀 머리들과 게이 강아지이며 그녀의 남친은 하버드 법대 교수이다.

원작인 흑백영화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1939)>를 고쳐서 나온 전편 <금발이 너무해>는 로맨틱 코미디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래서 2편까지 제작됐다. 전편 줄거리는 다 알겠지만 아주 간단하다. 삼인 합체물인 그녀가 어떻게 높디높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느냐이다. 역시 이번 후편도 그녀가 강아지의 엄마를 살려내러 워싱턴에 간다는 간단한 줄거리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웃기다. 보고 나면 골 때리는 영화다. 하루 걸러 두 번이나 봤다는 거 아닌가. 볼 때는 하나도 안 웃기고, 안 야하며 핑크 색만 보면 혐오 증상이 5초간 생기는 핑크포비아를 만든다. 그런데 영화는 재미없지만 자고 나면 재밌어지는 영화다. 왜냐면 영화가 던지는 사유가 꽤 즐겁다.

먼저, 이 영화는 정치적 영화(Political films)인가?

영화 <금발이 너무해 2>는 정치적 영화협회(Political Film Society)가 매해 뽑는 올해의 수상작으로 노미네이트되었다. 아니, 아무 생각 없는 금발 미녀 영화가 무슨 < JFK >나 <제트>,< The Candidate >야? 맞다. 리즈 위더스푼이 맡았던 ‘엘 우즈’는 그냥 블론드 걸이다. 영화 속에서처럼 법과 세상을 아는 힐러리 같은 ‘레걸리 블론드(Legally blonde)’는 전혀 아니다.

최근에 읽은 블론드 걸 유머 하나를 소개하자면,
질문: 블론드 걸은 어떻게 이메일을 복사하는가?
답: 똥꼬 치마를 입고는 통째로 모니터를 들어다가 복사기 위에 올려놓고 확 복사 버튼을 눌러버린다.

이처럼 미국에서 ‘블론드’는 백치미와 섹시함을 상징한다. 그러니 아무 생각 없는 금발 미녀가 나와서 1시간 35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삽질하다 끝나는 영화가 무슨 정치적 영화냐고 묻는 건 닭짓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영화는 정치적 영화냐, 아니냐란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치적 영화인가.

국회의원 나오고 백악관 나온다고 정치적 영화는 물론 아니고, 정치를 소재가 아닌 주제나 사회변혁의 무기로 다룬 일련의 영화를 정치적 영화라고 말한다. 프랑스 영화감독인 고다르 왈,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거나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했다. 그런데도 금발 미녀 영화가 정치적 영화라는 과대망상적인 오해를 사는 근거는 불의에 맞서 싸워대는 금발 미녀의 맹렬한 삽질을 혼동해서이다.

우리의 금발 미녀 엘 우즈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성조기 스카프를 메고 정치적인 개싸움이 이뤄지는 워싱턴으로 날라간다. 삽질의 본질은 강아지의 인권을 사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실험용 팔자인 강아지 엄마를 구출해서 자신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시키려는 강력한 의지 구현인 것이다. 원래 금발 미녀 엘 우즈는 국가 권력이나 불의에 맞서 싸운다는 문제의식도 없고, 전복하려는 의지도 없으며 정치적인 신념조차 없다. 그녀의 신념은 어릴 때부터 입고 자란 베르사체 옷과 액세사리가 예술이라는 것뿐이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 2>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보여준다. 불법을 고발하고 정의로운 법을 세우기 위해 거리로 나가 농성하고 지랄을 하더라도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신념이 없으며 그 정치적 신념의 올바름에 대한 타당한 근거나 정당성이 없다면 그냥 삽질이라고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음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음이다.

B급 로맨틱 코미디 개작이 주 전공인 시나리오 작가 케이트 콘델은 ‘이 영화가 정치적이냐’란 질문에 무엇이 정치적이냐고 반문했다. <금발이 너무해2>를 탄생시킨 작가다운 말이다. 그녀는 이 영화를 빨간 필름이 아닌 분홍 필름으로 봐달라고 했다.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한 건 했다. <금발이 너무해2>는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워싱턴의 부정직성에 대해 지적한다. <금발이 너무해 2>식의 단순 격파로 갑자기 정직한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 두꺼운 세상을 영화는 얼핏 보여준다.

삶은 예술을 모방하듯이 정치적 영화는 사회의 트렌드를 깬다. 정치적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날 것으로 보게 해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왜 옳아야 하는 지를 영화라는 창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영화를 추천하자면?
<로저와 나(Roger and me)(1989년, 마이클 무어 감독, 미국, 다큐)>
마이클 무어는 우리에게 부시를 엿먹인 감독으로 알려진 이다. 가장 최근 부시한테 보낸 편지 중 최근의 엿은 ‘내가 언제 너한테 장미 정원을 약속했니? 장미 부시야.’이다. 별명이 면도날 유머리스트인 만큼 날카로운 정치적 칼날을 다큐멘터리와 책, 정치에 쏟아 붓는다. 그 중 부시를 엿먹인 책은 국내에도 출간된 <멍청한 백인들(Stupid White Man:2002)>이다.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는 자신의 고향 미시간 플린트에 있는 최대의 GM공장 폐쇄 사태가 발생하자 보름 동안 배운 촬영 기술을 가지고 덤벼서 나온 걸작이다. ‘88년 자동차 기업인 GM사가 저임금 노동력 확보를 위해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한다며 공장이 폐쇄된다. 플린트시의 3만 여명은 일자리를 잃고 마이클 무어 가족도 사회 경제적 공항을 피해가지 못하게 된다. 작가 마이클 무어는 GM 사장 로저 스미스를 플린트시로 데려다 이 끔찍한 상황을 ‘너도 한번 겪어봐라’며 일일 체험 시키려는 멋진 계획을 집요하게 시도한다.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당연히 보면 안다.

<에르네스트 체 게바라 볼리비아 일기(1996, 스위스, 리차드 딘도 감독, 다큐)>

체는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금발이 너무해 2>에서 엘 우즈가 강아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늘 느끼듯이 말이다. 그는 사랑하는 딸 일디타에게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란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신념과 따듯한 부정이 담긴 편지글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가 일기를 매우 잘 쓰는 일기맨이였기에 나온 다큐다. 그는 볼리비아 전투 당시 자신의 빨치산 투쟁을 꼼꼼히 기록했고 이 작품은 그의 일기 덕을 톡톡히 본다. 줄거리는 쿠바 혁명을 일구어 낸 체가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볼리비아로 갔을 때 벌인 빨치산 투쟁을 담아낸다. 그의 일기와 함께 당시 사람들의 증언이 오가며 남미 민중을 해방시키려는 투사인 그를 만날 수 있으며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보탬이 되는 다큐멘터리이다. 참고로 체를 다룬 <체 게바라(Che Guevara:Mackenna's gold, 1969, 리차드 플레이셔 감독)>영화도 있다. 주인공인 오마 샤리프는 체가 ‘닥터 지바고’를 본 후 찍었다나. 영화 체(che)는 투사보다는 검정 베레모를 쓴 인간적인 체를 더 느낄 수 있다.

<마리안느와 줄리안느(Die Bleierne Zeit: Marianne&Juliane, 1981,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독일)>
그녀는 독일 뉴 저먼 시네마 운동의 기수들 중 유일한 여성 감독이다. 우리에게는 빔 벤더스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베르너 헤어조크, 폴커 슐렌도르프까지는 알려졌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낯설다. 비디오가 아닌 영화제를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영화가 <로자 룩셈 부르크(1986)>,<자매들, 행복의 균형(Schwestern oder die Balance des Gl cks, 1979)>뿐이다. 그녀는 1942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고 파리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며 60년대 독일로 돌아와 단편을 찍게 되며 <뉴 저먼 시네마>영화에 출연하는 유명한 배우가 된다. 그녀의 남편은 <양철북>을 만든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이며, 남편과 함께 뉴 저먼 시네마 운동의 기수가 된다.

그녀는 지금껏 30여 편이 넘는 영화와 TV극에서 연기를 해오고 있으며, 열 편 이상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녀의 관심은 전후 독일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그 여성의 속내를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접근해 간다. 하지만 과거부터 최근 영화까지 백미는 역시 <마리안느와 줄리안느>란 작품이다. 영화 속에는 투사인 동생과 작가인 언니인 자매가 나온다. 그리고 자매는 독일 전후 사회 속에서 개인적인 삶과 역사적인 삶을 다르게 투쟁하며 살아간다. 베니스 필름 페스티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서라기 보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80년대 말 암울한 역사와 끔찍하게도 닮았기 때문이다. 남이 아닌 우리의 역사를 그렸기에 보면서 전율했던 영화이며, 트로타 감독이 왜 영화란 걸 만드는가를 알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최근 그녀의 인터뷰 중 ‘삶은 때때로 굉장히 무거운 방법으로 당신을 웃긴다.’란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금발이 너무해 2>는 굉장히 가벼운 방법으로 우리를 웃긴다. 못 만든 영화가 왜 잘 팔리나. 팔리는 코드를 읽어내고 대중이 보고 싶고 원하는 씬을 떡하니 보여줘서이다. 잘 만든다고 돈 많이 든다고 잘 팔리는 건 아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기도 하다. 유행하는 공주 패션, 명품 중독자들, 쭉쭉 빵빵 블론드들 덕에 <금발이 너무해 2>영화는 열심히 잘 팔리고 있다. 그러니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우리시대의 여성, 금발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분류해야 한다. 거리에 나가보면 명품에 환장한 금발이 복제품들이 널렸으니까 말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약혼자인 법대 교수는 금발 미녀 엘 우즈한테 ‘알지? 넌 특별해.’ 말한다. 사실 그녀는 특별하다. 세 명이나 합체되었으니 아니 특별할 수가 있나. 게다가 그녀는 열심히 삽질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은 딱 둘이다. 정신병자거나 삽질하는 닭. 이 영화를 재밌게 보고 싶다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는 금발 미녀한테 빠져라. 금발 미녀가 베르사체 가방을 엥기면서 ‘어머, 어머’하며 뜨겁게 포옹해줄 터이니.

2 )
apfl529
ㅍ   
2009-09-21 18:35
kpop20
금발이너무해 재미있어요   
2007-05-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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