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영화는 정치적 영화(Political films)인가?
영화 <금발이 너무해 2>는 정치적 영화협회(Political Film Society)가 매해 뽑는 올해의 수상작으로 노미네이트되었다. 아니, 아무 생각 없는 금발 미녀 영화가 무슨 < JFK >나 <제트>,< The Candidate >야? 맞다. 리즈 위더스푼이 맡았던 ‘엘 우즈’는 그냥 블론드 걸이다. 영화 속에서처럼 법과 세상을 아는 힐러리 같은 ‘레걸리 블론드(Legally blonde)’는 전혀 아니다.
최근에 읽은 블론드 걸 유머 하나를 소개하자면,
질문: 블론드 걸은 어떻게 이메일을 복사하는가?
답: 똥꼬 치마를 입고는 통째로 모니터를 들어다가 복사기 위에 올려놓고 확 복사 버튼을 눌러버린다.
이처럼 미국에서 ‘블론드’는 백치미와 섹시함을 상징한다. 그러니 아무 생각 없는 금발 미녀가 나와서 1시간 35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삽질하다 끝나는 영화가 무슨 정치적 영화냐고 묻는 건 닭짓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영화는 정치적 영화냐, 아니냐란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치적 영화인가.
국회의원 나오고 백악관 나온다고 정치적 영화는 물론 아니고, 정치를 소재가 아닌 주제나 사회변혁의 무기로 다룬 일련의 영화를 정치적 영화라고 말한다. 프랑스 영화감독인 고다르 왈,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거나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했다. 그런데도 금발 미녀 영화가 정치적 영화라는 과대망상적인 오해를 사는 근거는 불의에 맞서 싸워대는 금발 미녀의 맹렬한 삽질을 혼동해서이다.
우리의 금발 미녀 엘 우즈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성조기 스카프를 메고 정치적인 개싸움이 이뤄지는 워싱턴으로 날라간다. 삽질의 본질은 강아지의 인권을 사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실험용 팔자인 강아지 엄마를 구출해서 자신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시키려는 강력한 의지 구현인 것이다. 원래 금발 미녀 엘 우즈는 국가 권력이나 불의에 맞서 싸운다는 문제의식도 없고, 전복하려는 의지도 없으며 정치적인 신념조차 없다. 그녀의 신념은 어릴 때부터 입고 자란 베르사체 옷과 액세사리가 예술이라는 것뿐이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 2>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보여준다. 불법을 고발하고 정의로운 법을 세우기 위해 거리로 나가 농성하고 지랄을 하더라도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신념이 없으며 그 정치적 신념의 올바름에 대한 타당한 근거나 정당성이 없다면 그냥 삽질이라고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음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음이다.
B급 로맨틱 코미디 개작이 주 전공인 시나리오 작가 케이트 콘델은 ‘이 영화가 정치적이냐’란 질문에 무엇이 정치적이냐고 반문했다. <금발이 너무해2>를 탄생시킨 작가다운 말이다. 그녀는 이 영화를 빨간 필름이 아닌 분홍 필름으로 봐달라고 했다.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한 건 했다. <금발이 너무해2>는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워싱턴의 부정직성에 대해 지적한다. <금발이 너무해 2>식의 단순 격파로 갑자기 정직한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 두꺼운 세상을 영화는 얼핏 보여준다.
삶은 예술을 모방하듯이 정치적 영화는 사회의 트렌드를 깬다. 정치적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날 것으로 보게 해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왜 옳아야 하는 지를 영화라는 창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영화를 추천하자면?
<로저와 나(Roger and me)(1989년, 마이클 무어 감독, 미국, 다큐)>
<에르네스트 체 게바라 볼리비아 일기(1996, 스위스, 리차드 딘도 감독, 다큐)>
체는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마리안느와 줄리안느(Die Bleierne Zeit: Marianne&Juliane, 1981,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독일)>
그녀는 지금껏 30여 편이 넘는 영화와 TV극에서 연기를 해오고 있으며, 열 편 이상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녀의 관심은 전후 독일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그 여성의 속내를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접근해 간다. 하지만 과거부터 최근 영화
최근 그녀의 인터뷰 중 ‘삶은 때때로 굉장히 무거운 방법으로 당신을 웃긴다.’란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금발이 너무해 2>는 굉장히 가벼운 방법으로 우리를 웃긴다. 못 만든 영화가 왜 잘 팔리나. 팔리는 코드를 읽어내고 대중이 보고 싶고 원하는 씬을 떡하니 보여줘서이다. 잘 만든다고 돈 많이 든다고 잘 팔리는 건 아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기도 하다. 유행하는 공주 패션, 명품 중독자들, 쭉쭉 빵빵 블론드들 덕에 <금발이 너무해 2>영화는 열심히 잘 팔리고 있다. 그러니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우리시대의 여성, 금발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분류해야 한다. 거리에 나가보면 명품에 환장한 금발이 복제품들이 널렸으니까 말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약혼자인 법대 교수는 금발 미녀 엘 우즈한테 ‘알지? 넌 특별해.’ 말한다. 사실 그녀는 특별하다. 세 명이나 합체되었으니 아니 특별할 수가 있나. 게다가 그녀는 열심히 삽질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은 딱 둘이다. 정신병자거나 삽질하는 닭. 이 영화를 재밌게 보고 싶다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는 금발 미녀한테 빠져라. 금발 미녀가 베르사체 가방을 엥기면서 ‘어머, 어머’하며 뜨겁게 포옹해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