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글이 잘 안 써지는데요. 영화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나 봅니다. 특별한 감흥이 없어서일 텐데, 그 이유를 자세히 말하다 보면 영화 종반에서야 밝혀지는 실상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스포일러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따져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 맘대로 소설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거 참 야단났네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영화들을 떠올렸나 봐요. 대체로 그럴 만합니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객은 그렇게 볼 수 있는 거지요. 저는 김지운 감독이 그 영화들을 흉내 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흉내를 내면 또 어떻습니까.) 그런데 또한 감독이 그 점을 헤아릴 필요가 없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니 다르게 봐 달라고 요구해도, 그 요구가 억지라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다가 떠오르는 다른 영화로 기준을 삼게 되는 관객이 있다면, 말릴 방법이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다른 영화의 비슷한 설정과 견주어, 이 영화가 넘어서거나 최소한 비기지 못하면, 그렇게 느껴지면, 감독이 아무리 다른 요소를 강조했어도, 제대로 어필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저는 그 다른 영화들 리스트에 <파이트 클럽>을 추가하겠습니다. 그 영화는
문제는 디테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명색이 이 글의 대상인 영화 <장화, 홍련>에 대해서는 전혀 세부적으로 접근할 뜻이 없는 제가 입에 담기에는 좀 뻔뻔스러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는 제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디테일이란 뭘까요? ‘풍부함’과 ‘치밀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앙상하면서 치밀하기를 기대할 수 없고, 엉성한 것이 풍부해 보이기는 힘든 까닭입니다. 어렵지요. 그러니 좋은 영화가 드물지요. 드물어야 하는 거지요.
<장화, 홍련>은 일단 풍부함보다는 치밀함에 승부를 거는 영화로 봐야 합니다. 다 동의하실 거예요. 그리고 어느 정도 치밀한 영화입니다. 크게 책잡힐 구석은 없지요. 그런데 뭔가 미진합니다. 엉성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데, 이른바 뿅 가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더 말하자면 ‘어느 정도’에서 주저앉고 만 것이 아닌가…… 왜일까요? 풍부함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반전이 있을 때마다, 영화에서 확인해 주든 관객이 머릿속으로 되돌아보든, 경탄할 만큼 정교한 맛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비빔밥이 오묘한 맛을 내려면 우선 들어가는 나물의 가짓수가 겁나게 많고 봐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물론 감독이 원한 것은 다른 느낌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객 역시 다른 것을 원할 수 있고, 그것은 무시해도 좋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원작이 있고 참조가 가능한 다른 영화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운명이니까요. 그 영화들(다 아실 것으로 짐작되어 제목을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그 중의 어떤 영화가 확보하고 있는 높은 수준의 치밀함은 그만큼 풍부한 디테일에 힘입고 있다는 것을, 감독은 소홀히 여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흉내내도 나쁠 것이 없지요.
제 생각에는 이 영화에 귀신이 나오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같은 공포라도 호러의 요소를 더 줄이고 심리적인 스릴러의 효과를 더 강화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왕에 원작을 다시 해석해서 재창조할 바에는 더 과감하게 갔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더 잘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었을까…… 그런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몇 개의 장면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