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본 영화 중 최악의 영화 중의 하나로 나는 톰 행크스의 '그린마일'을 주저하지 않고 뽑곤한다. 도대체 왜? 라고 반문할사람이 꽤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시나리오는 결코 만점을 받을 수 없다. 도대체 왜?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지? 하는 관객의 물음에 답변을 해줄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니라 환타지일 따름이다. 아니 최소한 동화 속 주인공들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고 그의 삐뚤어진 성격을 증거해줄 만한 배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뭐 계모는 원래 나쁜 여자들이며 대다수의 왕자들은 용감하기 짝이 없다는 스테레오 타입화된 기호에 전적으로 의존하긴 하지만.
그러나 '그린마일'의 주인공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착해빠진 것이지? 왜 저렇게 저 일견 흉칙하게 생긴 흑인의 행동에 일방적으로 동정을 표시하는 것일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관성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너무나도 쉽사리 초자연적인 현상을 수긍하는 착하기 짝이 없는 교도관들의 행동은 웃기다 못해 화가 나기까지 했다.
왜 그리 노블리는 운이 좋은건가? 착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가식적이지 않는 그녀의 심성에 하늘이 알아서 복을 내려서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것은 영화이지 동화가 아니지 않은가. 무턱대고 그녀에게 친절한 오클라호마의 사람들을 나와 같이 '사악'한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원작 소설을 무리하게 압축해서 스크린에 옮기려 했던 감독의 역량 부족에서 기인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블리가 월마트 베이비를 출산한 후 그녀의 딸 아메리쿠스가 5살이 되기까지 5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버려서 소설 상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포기한 채 러닝타임에 급급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난 솔직히 노블리에게 유산을 상속한 것이 시스터가 아니라 병으로 앓고 있던 포니의 누나인 줄 알았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서 남편이 아닌 5년전엔 생판 남인 여자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것이 조금 모순이 있지 않은가?)
물론 인간성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존재해야 하고 그것에 대한 현대인들의 무한한 향수가 바로 이러한 조금은 대책 없는 '성선설'적 영화가 호평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이러한 세상에 대한 무조건 적인 애정공세는 또 다른 모순을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미혼모로써 노블리가 삶을 개척하기 위해 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진이라는 수단을 택하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의 삶의 9할을 이끈 것은 '행운'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 현실 사회 속의 모순된 성역할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에게도 그런 '행운'이 마냥 찾아올 것인가?
물론 모든 여성이 주연인 영화가 '델마와 루이스'일 필요도 없고 '바운드'일 필요도 없다. 난 단지 이 영화는 그 성격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뿐이다. 여성들의 사실적인 삶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휴먼 드라마이든지,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미혼모 노블리'라는 부제로 또 하나의 동화를 만들던지.
고단한 현실을 오늘 하루도 살아내야 할 여성들에게 과연 이 영화가 위안이 될 지 불쾌감을 주게 될 지는 모르겠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여성들의 행복은 타율적일 수 밖에 없다는(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친절과 도움, 그리고 좋은 남자로부터 비롯 되는....) 어쩔수 없는 남성의 시각을 대변하는 영화라서 과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난 이렇게 아무생각없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걸까.... 비딱한 시선의 운명이여..ㅠㅠ)
왕자의(남성의) 친절한 손을 잡고서만 일어날 수 있는 신데렐라가 아닌 세상에 맞설 수 있는 용기 있는 그녀를 보고 싶다. 더불어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