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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발기의 충일감을 맛보시길
사자성어 | 2003년 5월 31일 토요일 | 서대원 이메일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하지만 당연하게도, 성을 인간 대 인간의 소통양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권력과 돈의 유무에 따라 서로의 관계를 위계화 시키고 수직화 시키는 데 익숙하다. 아마도, 어릴 적 밥상머리 교육부터 시작해 철옹성처럼 굳건히 닫힌 제도권 교육의 크나큰? 가르침에 훈련돼 있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기에, 자기만의 소우주 안에서 성에 관해 자유롭게 상상하는 그것마저 어떤 윤리적 억압에 허덕이며 기이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하지만 타인의 의식에 의해 공작된 거대한 성의 질서는 자기 스스로를 가두는 족쇄로 군림하며 사회를 획일화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할 뿐이다. 때문에, 일견 외양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가는 이 성에 관한 관성의 껍질에 균열을 내야 함은 응당 당연하다.

제목부터 발랄하기 그지없는 사자성어(四者性語)는 그 같은 대항의 행동을 행하는 데 있어 아주 유용한 도구이자 영화이다.

각각 독립영화라는 토대의 영역에서는 이미 자신의 흔적을 공고히 남긴 네 명의 감독이 성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표현한 <사자성어>는 이들의 작품을 독립된 형태로 묶어낸 옴니버스 영화다. 물론, 현 시대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장편 극영화보다는 다소 거칠고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이 4인의 작품은 그 어떤 말랑말랑 한 포장술과 무슨무슨 ‘척’하는 위선으로 짐짓 뭔가 있는 듯한 표정을 한 채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머리 안에 굳어버린 기존의 성 관념들의 딱지를 하품하지 않고 낄낄대며 떨궈 낼 수 있다면 말 다한 거 아닌가!

장선우 감독의 <성소> 원작시의 주인공인 김정구 감독의 <하지>는 남녀의 섹스를 카니발의 정점에 위치한 비밀스런 행위로 그리지 않고 가장 일상적인 것 중의 하나로 심히 건조하게 묘사한다. 맞선을 본 남녀는 아무런 거리낌이 짱깨집에서, 용을 쓰며 포효하는 그 어떤 교성과 몸부림도 없이, 무표정함을 견지한 채 서로의 직업을 물으며 차분하게 침실노동을 행한다. 그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백주대낮의 공원에서 수많은 커플은 자연스럽게 몸을 섞으며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잔디밭을 거닌다. 이처럼 <하지>는 경외감을 가지고 신성하게 다루어야 할 성을 별 거 아닌 일상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이송희일 감독의 <마초사냥꾼들>과 유상곤 감독의 <바디(body)>는 폭력적으로 억압받고 등한시되는 하위문화나 타자들과의 만남의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컷 지상주의에 단련된 우리에게, 어색하지만 손을 먼저 내미는 영화다.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지구를 지켜라>의 분위기와 유사한 <마초사냥꾼들>은 여장(드렉퀸)을 한 해병대 출신의 예비역을 통해 한국 저변에 쫙 깔려있는 꼴 같지 않은 마초들에게 일격필살의 똥침을 날리며 사회로부터 홀대를 받는 성적 소수자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사자성어> 중 느꼈던 바가 유독 컸던 <바디>는 늙은 창녀와 하반신이 불편한 소녀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며 우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몸의 다름이 그들을 연대하게 하는 끈으로서 역할을 한 것이다. 암컷의 몸을 오로지 정복과 탐욕과 지배관계로 바라보는 수컷의 수직적 시선에 교정이 필요함을 <바디>는, 정색을 하고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한번 쯤 생각해보게끔 나지막이 말해준다.

<둘 하나 섹스>의 이지상 감독이 연출한 ‘원’색적이고, ‘적’나라하며, ‘외’설적이고, ‘선’정적인 <원적외선>은 한 마디로 ‘골 때리는’ 재미난 에피소드다. 영롱한 춘화도들이 파노라마 치며 시작을 여는 작품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춘향전 등의 고전을 걸쭉한 사설꾼의 입담과 발랑 까진 자막을 곁들여 아주 심하게 비튼다.

특히, 지조의 상징인 춘향이가 방구석에서 자위를 즐기고, 샤넬 파이브를 거웃(거시기)에 뿌려대며 이몽령과 변학도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장면에서는 해학미의 정수가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자고로, 남녀상열지사의 섹스는 신분을 떠나 암수를 떠나 누구나 환장스럽게 즐길 수 있는 놀이에 다름 아니던가????

<사자성어>를 감상하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불경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껍질을 뚫고 나올 수 있을 만큼의 정신적 발기의 충일감을 맘껏 느껴보시길 바란다.

1 )
ejin4rang
발상이 좋았다   
2008-10-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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