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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적응해야 할까요? – ‘어댑테이션’을 보고
이해경의 무비레터 | 2003년 5월 16일 금요일 | 이해경 이메일

저는 소설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피곤하거든요. 한때는 그런 소설이나 영화를 일부러 찾아서 읽고 보기도 했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했나 봅니다. 복잡한 게 싫어진 거지요. 그런 작가나 감독들, 인생을 참 힘들게 사는구나 싶어 안쓰럽습니다. 소설이 잘 안 풀리니까 괜히 소설 속에서 또 소설 얘기를 늘어놓는 거 아니겠어요? 시나리오를 못 쓰고 헤매는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작가의 속이 그리 편할 리는 없을 겁니다. 진짜 천재들은 그런 짓 안 하지요.

하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소설이나 영화를 외면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어떤 면이 싫다고 해서 그 모습을 쉽게 버릴 수는 없잖아요. 천재가 아닌 자의 숙명 같은 것을 저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세상과 정면으로 대결할 자신이 없어 괜한 꼬투리를 잡아 자신에게 시비 거는 딱한 처지를 저라도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런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어댑테이션>을 봤지요.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알맹이 없이 골치만 아프게 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Adaptation’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각색'보다 먼저 나오는 풀이가 '적응'입니다. 말이 되지요. 시나리오 각색은 원작을 영화에 적응시키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각색'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런 코드로 이 영화를 언급한 글들은 이미 여러 편이 나와 있구요, 저는 좀 다른 얘기를 하겠습니다. 중심 테마인 '각색'을 축으로 겹겹이 짜여진 영화의 구조일랑 뒷전으로 밀어두고, '적응'이라는 코드를 앞세워 어줍잖은 인생론을 펼쳐볼 생각입니다.

먼저 영화의 중심 인물들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지요. 존 라로쉬라는 앞니 빠진 중년의 남자가 있습니다. 최고의 전문가라는 자부심으로 법을 어기며 온갖 난초를 캐러 다닙니다. 나중에는 포르노 사이트 운영에 재미를 붙이기도 하지요. 한 가지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열정입니다. 다음으로 수잔 올리언. 잡지 '뉴요커'의 중견 기자입니다. 그녀 또한 뉴요커의 삶을 살고 있지요. 존 라로쉬의 행적에 흥미를 느낀 그녀는 밀착 취재를 통해 '난초도둑'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써냅니다. 그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지게 됐으니, 일단 잘 나가는 캐리어 우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영화에서 두 남녀를 묶어내는 코드는 '열정'이라는 것을 짚어두고 넘어가겠습니다.

인물 소개를 계속하겠습니다. 영화는 '난초 도둑'의 각색을 맡은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의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대머리에다 뚱뚱하고 소심하고, 여자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 도리는 없겠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무슨 일인들 제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떠오르는 생각들을 열심히 녹음해봤자 목만 아프지 다 소용 없는 일이지요. 쓰지도 못하는 시나리오 걱정으로 애인과의 하룻밤을 물리치다니, 참으로 한심하고 멍청한 인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심각한 그의 노이로제 증상을 부채질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쌍둥이 형제의 나머지 하나인 도널드 카우프만. 외모는 똑같지만 찰리와는 정반대의 성격입니다. 쾌활하고 자신감에 넘치고, 그래서 여자를 웃길 줄도 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도널드는 자기도 시나리오를 써보겠다고 나서더니, 할리우드 제작자의 구미에 딱 맞는 대박 터질 물건을 뚝딱 만들어냅니다. 찰리가 성의 없이 던진 조언을 중요한 아이디어로 삼았다네요. 일약 시나리오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도널드. 찰리로서는 기가 차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럴 노릇이지요. 형제의 결정적인 차이는 자신에 대한 태도에 있음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세상에 잘 적응하는 인간과 그러지 못하는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 흉내를 한번 내봤는데요, 자신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나중에 천천히 따져 보도록 하시구요, 어떻습니까? 위의 네 인물… 존, 수잔, 찰리, 도널드를 놓고 두 개의 집합을 만들어 보면 어떤 모양의 밴 다이어그램이 그려질까요? 편의상 적응 쪽을 Y, 부적응 쪽을 N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우선 손쉽게 찰리∈N이라는 답을 하나 구할 수 있겠군요. 그 판단에 토를 달 분은 없으리라 여깁니다. 그리고 N에 들어갈 사람이 또 있나요? 언뜻 봐서는 3:1로 간단히 끝내버릴 수 있을 듯… 아, 존의 경우는 좀 애매한 데가 있나요? 쓰레기통 같은 차를 몰고 인디언들과 함께 꽃이나 따러 다니는 위인을 두고 Y에 속한다고 하기에는…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우는 모습을 봐서는 또 섣불리 찰리 같은 소심증 환자와 한 편이라고 몰아붙이기도 그렇고… 그럼, Y∩N?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니까 그 뭐냐 합집합의 여집합의 부분집합의…

사실은 나머지 두 사람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역시 이분법은 써먹기가 쉽지 않네요. 쌍둥이 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네 인물의 캐릭터가 모두 한 인간 속에 들어있는 다면성의 분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의 집합 기호는 이쯤에서 잊어버리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렵니다. 돌아갔더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물 건너간 줄 알았던 이분법이 보기 좋게 성립하네요. 그런데 스코어가 3:1이 아니라 1:3이군요. 셋 중에서 누구누구가 찰리와 한 배를 탔을까요? 그게 아니라 애초와는 반대로 찰리만 세상에 적응하고 나머지는 다 떨려난 것이었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존의 속부터 들춰보면, 이 남자에게는 상처가 있습니다. 사고와 재난으로 가족을 잃고 일터를 날려보냈던 거예요. 대상을 쉽게 바꿔 퍼붓는 그의 열정은, 말하자면 버티는 안간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난초는 마약이었어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난초를 가지고 마약을 만들어 들이키며 세상살이를 버텨온 거예요. 존의 열정을 사랑하게 된 수잔도 그와 함께 마약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는 물 속에서 허둥대며 난초를 찾아 헤매는 존의 초라한 모습을 확인하고 허무를 느낀 듯싶은데요. 자신에게 결핍된 열정을 타인을 통해 알고 싶어한 그녀의 갈증은, 그렇게 세상이 금지한 방법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둘은 그렇다 치고, 가장 확실하게 세상의 법칙을 따라 성공 가도를 달릴 줄 알았던 도널드는 어쩌다가 도태되고 말았을까요?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말을 아끼겠습니다. 도널드가 겉보기처럼 뺀질뺀질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준엄한 세상의 법칙임을 잊지 마십사 당부드리는 것으로… 인생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라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다른 글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드린 적은 있는데…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겠지요. 뭔가 깨달음을 얻고 시나리오를 완성한 찰리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말 겁니다. 이제 겨우 세상을 살아갈 자세를 익히기 시작했을 뿐이니까요. 문제는, 세상에 잘 적응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냐는 겁니다. 세상이 문제 투성이니… 그렇다고 세상 등지고 사는 인생을 마냥 두둔할 수도 없고… 골치 아프니까 방향을 틀어 볼까요. 세상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적응을 꾀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표현이 이상한가요? 하지만 자기 자신과 사이 좋게 지내는 사람이 드물 거라고 보는데요. 그 불화를 이겨내거나 최소한 견뎌내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 점에 관해서라면 찰리도 할 말이 있을 겁니다. 영화 말미에 도널드로부터 한 수 배운 덕이지요. 그 내용도 자세히 밝히면 재미없구요, 요컨대 자기 감정에 충실하라, 솔직하라는 거지요. 상투적인 해답이라고 해서 업신여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쓸데없이 남을 의식하느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허비하며 사나요? 정작 타인에 대한 배려에는 한없이 인색한 채 말입니다. 실천이 쉽지는 않습니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는 게 영화처럼 잘 안 되지요. 두렵기도 하고 남사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세상에 정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세상이 자신에게 적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물론 과도한 용기나 과장된 연기는 금물이지요. 영화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찰리의 달라진 모습은, 열정에 들떠 있지 않고 안정감 있게 진실해 보입니다. 그런 뒤에 찰리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영화의 결말이 싱겁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제가 아직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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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p1434
재밌네요   
2010-04-03 13:01
apfl529
좋은 글 감사~   
2009-09-21 18:36
kpop20
못봤어요 ㅠㅠ   
2007-05-24 15:44
imgold
생소한 제목인데... 이해경님글을 읽으니 궁금해 집니다. 기회가 되면 꼭 보겠습니다.^^   
2005-02-0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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