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프로듀서의 절대적 입김 아래 생산된 기획영화가 판을 치는 현 시대에서는, 일종에 작가주의적 태도를 견지를 일군의 감독들에 한해 해당되는 말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다. 또한 영화가 개인의 창작품이라기보다는 분업적 과정과 협동작업으로 이루어진 집단적 성격을 띤 매체이기에 딱히 무리가 있는 정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지창조의 위대한 비밀처럼 한 없이 수많은 암호들로 가득 메워진 필름에서 가장 중심에 서 있고 정점에 위치한 한 사람을 택일 하라면 거개의 사람들이 ‘감독’이라고 주저 없이 답할 것이다.
그만큼 한 영화에서 감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외관적으로 보이는 위상에서는 변화가 있을지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는 절대적이라 주장해도 크게 반문하기는 힘들다. 해서, 무비스트는 아득한 시대의 주술사 못지않은 제의 의식을 스크린을 통해 치르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소하게나마 끄집어내기로 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 기획코너는 감독론이고, 우리식대로 이야기하자면 좋은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가교 역할 정도의 꼭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상태라 정기적으로 이 기획기사가 업데이트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 하는 대로 성심성의껏 미지의 감독부터 우리와 친숙한 감독에 이르기까지, 대신 그 이면에 깔린 그 무엇을 들추어내며, 두루두루 살펴볼 예정이다.
이러한 탄탄치 못한 준비과정 속에서 첫 테이프를 끊게 된 감독은 독일의 베르너 헤어조그다. 그를 스타트 주자로 선택한 동기는 크게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다만, 최근에 그의 영화들을 묶은 <베르너 헤어조그 콜렉션>이 DVD 박스세트가 출시됐다는 것과 작년 부천판타스틱 국제영화제를 통해 어느 정도는 알려 졌다는 사실 정도가 이유라면 이유다.
쓰고 나니 사설이 길어졌는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영화라는 매체가 과학적 소산위에서 창안된 기계장치인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발명품을 지금까지 받치고 있는 세 요소들은 아마도 ‘테크놀로지’와 그것을 지속. 재생산 시키는 ‘자본’, 그리고 우리의 정서와 상상력의 자장 안에 끊임없이 침투해 버겁게나마 공명을 일으키는 ‘예술에의 의지’일 것이다. 이 세 개의 역동적인 힘에 의하여 영화는 스스로 자기 증식을 꾀하고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재의 영화는, 기실 이 세 개의 토대 중에서 테크놀로지와 자본에만 의지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쾌락의 절벽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때문에 이러한 불온한 시대 속에서 마지막이자 가장 결정적 토대라 할 수 있는 예술에의 의지에 기댄 영화를 우리가 만나야 함은 자못 정해진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 마리 슈트라우프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함께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였던 베르너 헤어조그와 그의 역작 <피츠카랄드 Fitzcarraldo(82년)>을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굳이, 그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그의 수많은 작품 중 <피츠카랄도> 단 한 편을 취사선택해 편애 한 이유는, 이 필름이 오래 전부터 시중에 DVD로 출시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그에 대한 딱딱한 배경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감상할 만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헤어조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작품만큼 좋은 텍스트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헤어조그는, 80년대 전후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수행했던 독일문화원에서 <아귀레, 신의 분노 Aguirre, der Zorn Gottes(72년)>가 상영됨으로써, 영화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업고 우리와 처음으로 조우했던 인물이다. 당시 청년 영화애호가들이었던 이들에 의해 이 기이한 감독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고, 결국 그 당시의 청년 중의 하나였던 김홍준 감독이 위원장으로 자리하고 있는 부천영화제를 통하여, 안개에 쌓은 그의 실체를 우리들은 낯설게나마 형형하게 목도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귀레, 신의 분노>가 씨네큐브에서 정식 상영됨으로써, 일반인들도 그의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하게 됐고.
왜냐하면, 이 몽상가의 필름은 서사를 지닌 내러티브에 기댄 영화가 아니라, 숨이 멎일 듯 스멀스멀 보는 이를 압도해가는 주술적 풍광 속에 도사리고 있는 기묘한 매혹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성적으로는 오롯이 이해할 수 없는 광대한(광포해 보일지도 모르는) 풍경의 불가해함이 그의 필름 속에서는 거칠지만 고스란히 노출돼 있기에 그러하다. 때문에 그 거대한 벽화 속에서, 단 몇 개의 단어로 그를 단순화시키는 어떠한 상징성이니 메타포니 같은 것들을 찾으려 노력했다면, 당신은 자신이 영화 중에 졸았음을 자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헤어조그의 작품들을 필설을 통해서만 온전하게 설득시켜야 한다면, 진심으로 말하지만, 정말이지 그것은 이미 생산성 없는 커뮤니케이션이자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기에 필자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정보성 또한 영화를 보기 전에는 한줌의 모래에 다름 아니다.
엔니코 카루소의 오폐라 공연에서 그의 신적인 목소리에 푹 빠진 피츠카랄도(클라우스 킨스키)는 아마존 한 가운데인 오지에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고, 이곳에 그를 초대해 공연을 열겠다는, 미친 놈 소리 듣기 딱 좋은, 광적인 과욕을 부린다. 당연, 돈을 대주겠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몽상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돈줄을 찾아 나서는 극한적 모험을 감행한다. 그 과정 중 피츠카랄도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방법을 자행하는데, 바로 원주민을 동원해 300톤에 달하는 기선을 원초적인 노동만을 이용해 산을 넘어간다는 것이다.
믿어지시는가?? 어마어마한 증기선을 산으로 끌고 가 넘어간다는 황당한 설정이. 필자 또한 눈을 비비고 볼 만큼, 쉬이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테크놀로지나 CG의 도움 없이 온전히 생 육체적 노동으로만 기선을 끌고 산을 넘어가는 황홀함의 광경은 찰나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소름과 매혹이 공존하는 기묘한 순간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장면을 ‘스펙터클의 결정판’이라고 명명했지만, 글쎄 스펙터클이라는 비인간적이고 세련된 호사스러운 조어로, 경외심어린 그 지난한 풍경을 묘사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자연의 풍광은 외부에 실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넘어선다. 보는 이의 마음속으로, 그 풍광이 스며들어 무언가 알파가 더해진 그 무엇으로 전이돼 와 닿는다는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당신의 망막을 통해 상이 잡힐 때만이, 그간 상상한 모든 것에 저항을 느끼며 불가해한 체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헤어조그의 영화에는 피츠카랄도처럼 절대적 존재인 자연에 대항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귀레, 신의 분노>, <피츠카랄도>, <조각가 슈타이너의 황홀경>이 그러하다. 물론, 역으로 자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인물들 또한 다루고 있다. <보이체크>, <슈트로첵>, <라 수프리에르>. 이와 같은 극단적 설정들은 그가 이미 ‘과대망상증’ 환자, 기행을 일삼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듯,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모습을 작품 속에 투영시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일례로 <아귀레, 신의 분노> 촬영시, 거친 환경으로 인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킨스키가 영화작업에 불성실하자, 이에 대해 헤어조그는 권총으로 그를 겨누며 “영화를 그만 찍을 테냐, 아님 여기서 죽을 테냐”로 강경한 응수를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킨스키가 동료 배우들에게 칼날이 번쩍이는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힌 일, <피츠카랄도> 촬영시, 원주민들이 헤어조그에게 자신들이 대신 킨스키를 죽여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악명 높은 사건 등 영화만큼이나 유명한 일화들이 지금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헤어조그는 킨스키가 죽은 후, 그에 대한 자신의 진실된 입장을 회고 정리해 <나의 친애하는 적(1999년)>이라는 킨스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이 다큐를 통해 헤어조그는 킨스키가 얼마나 훌륭한 연기자였는지 말해주며, 그에 대한 각별한 정을 곳곳에 노출,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정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 다큐는 비단 이 둘의 관계뿐 아니라 감독과 배우의 미묘한 입장까지 잘 보여줘 많은 이들로부터 화제를 불러 모았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수많은 기행을 일삼으며 많은 영화애호가들의 뇌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클라우스 킨스키가, 수년전에 최고의 여배우로서 군림하며, 뭇 남성들의 리비도를 자극시킨 나스타샤 킨스킨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무수한 화제들을 쏟아 놓은 헤어조그의 역작 <피츠카랄도>를 보고 난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촬영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필연적인 수순이었는지 천우신조의 덕분이었는지, 이 영화의 촬영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라 할 수 있는 다큐가, 이미 레스 블랭크라는 미국독립영화 감독에 의하여 <버든 오브 드림스(82년)>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와 있었다. 따라서 <피츠카랄도>를 통해 헤어조그의 신앙에 가까운 절대적 신념을 우리가 볼 수 있었다면, <버든 오브 드림스>을 통해서는 그러한 신념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책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상념 어린 헤어조그의 자화상을 접할 수 있다.
자신의 과욕적인 몽상의 강박관념 속에서 일궈낸 <피츠카랄도>이후 헤어조그는, 영화평단의 관심권에서 비껴나 중 단편의 다큐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걸프전이 발발하고, 영화감독 못지않은 연출력을 CNN이 과시하며 스펙터클을 재현해내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이 마치 종군기자인 양 잔혹하고 황폐한 전쟁 현장으로 달려가 그곳의 피비린내 나는 비릿한 풍경을 담아 <어둠 속의 교훈 Lektionen in Finsternis(1992년)>이라는 자못 묵시록적인 다큐를 세상에 선보인다. 그 후로도 그는 유대인의 삶을 다룬 <인빈서블 invincible(2001년)>을 연출하는 등 계속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평생을 세계와 인간을 둘러싼 광기에 대한 테마를 자신의 반려자처럼 곁에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변주해온 베르너 헤어조그. 때로는 부조리하게, 때로는 극한대의 긴장감으로 몰고 가는 이 신비주의자가 그려내는 자연의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필시 그는 문명화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 지독한 회의를 느끼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러기에 그는 미친 듯이 광기 어린 집념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속내와 의지를 영화라는 매체를 다리삼아 피력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것도 모른 채, 베르너 헤어조그를 ‘정신나간 망상가’니 정신병원에 감금해야 할 ‘극도의 불안정한 몽상가’라느니 하며 지금 이 순간까지 치부해왔던 필자를 포함한 우리들의 모습을 뒤늦게나마 곱씹어 돌이켜본다면, 우리야말로 혹 사악함이 그득한 세상의 광기에 사로잡혀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못 심난해진다. 아니라면, 그의 광기는 시대가 인식하지 못한 숭고한 신념에 다름 아닌 말로 대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맨 마지막 스틸사진의 인물들은 왼쪽이 <볼링 포 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 중간이 헤어조그, 오른쪽이 <12몽키즈>와 <브라질>의 테리 길리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