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는 전지전능하다고 자부하는 인간에게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들이 존(잠)재 한다는 사실을 휘황한 스펙터클과 함께 각인시켜 주는 장르다. 그와 동시에 이 장르는 그럼으로써 우리가 미처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보편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가치들의 재각성을 요구한다.
헌데, 그러한 움직일 수 없는 가치들의 지평으로 회귀하고자 우리를 이끄는 요체가 아이러니하게도 할리우드라는 사실이다. 규모의 경제와 기술 결정론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생산되는 무한증식의 순간적 스펙터클로 숭고한 사유 방식의 토대를 가볍게 밟아버리며 한 없이 우리를 일차원적 단세포로 퇴행시키는 그들이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코어>는 이 같은 뻔뻔함의 작태를 범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눈이 다라이처럼 크고 뻘겋게 충혈될 만큼 대단한 비주얼과 재미를 처음부터 끝까지 선사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재난영화의 공식틀에 온전히 안착한 채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갈 뿐이다. 대신, <코어>에는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아마겟돈>과 <딥 임펙트>와 또는 기존의 것들과 비교해 배 다른 형제 정도의 차별점이 부여돼 있다. 그러한 사례들을 보자면, 지구를 카오스 그 자체로 뒤흔들어 놓을 광포한 기운의 진원지가 외계가 아닌 지구 내부에 존재한다는 점과 소소하게나마 막후에 의외의 에피소드가 포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유도하는 호기심 천국과 같은 설정 등이 되겠다.
지구 중심의 핵(코어)이 회전을 멈춰버려 자기장이 사라지게 됨으로써 갖가지 기상이변과 희한한 일이 속출, 결국 지구를 사수하기 위해 독수리 오형제가 깍두기를 붙여 최첨단 굴착기에 탑승한 채 출동, 땅 덩어리 속으로 돌진한다는 <코어>는 재난 영화답게 볼거리가 상당수 있다. 다만, 초반부에만 몰려 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이 엄한 데 불시착하는 장면이나 새떼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아무 데나 가미가제 식으로 헤딩해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히치콕의 <새>를 연상시키는 장관들은 분명 우리들을 눈을 홀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게다가 덤으로 L.A 다저스의 왼손타자 숀 그린도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코어>가 중후반을 치달으며 애석하게도 장르 안에 너무 폭 빠져들었는지 시선을 집중시키거나 뛰어난 그 무엇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시험 때문에 긴장해 벌렁 벌렁거리는 가슴을 다 잡고자 한 알만 복용해도 될 우황청심환을 두 알이나 먹으며 남용, 결국 너무 긴장이 풀린 나머지 후반으로 갈수록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패턴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한 알만 먹었어도 긴장과 이완을 오가며 전반부의 역동적인 스펙터클과 설정을 온전하게 지속시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