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사람은 너무나 완벽하면 매력이 없는 법이다. 그러기에 불특정다수보다 월등한 사회적 우성인자를 지닌 존재들은 대중들의 선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질투의 화신이기도 하다. 때문에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사실과 적잖은 유명 인사들의 가정불화와 야사를 접하면서 우리는,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도 어쩔 수 없구나 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자족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결점으로 똘똘 뭉친 인간과‘영웅’이라 불리는 존재는 다르다. 영웅이라는 경외심어린 호칭을 스스럼없이 갖다 드릴 수 있는 위인들은 주로 대의명분에 따라 거동을 하고, 그 명분이라는 것 또한 정의감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민들은 영웅이라는 대상을 한 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섣불리 자신과 비교하려거나 시기에 찬 시선을 그를 향해 뿌리지 않는다. 결국, 영웅이라는 이미지에는 진한 아우라가 배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영화와 만화, 그리고 여론이 창조해낸 천편일률적인 끄떡없음의 슈퍼 영웅의 이미지가 더 이상 대중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그러기에 작금의 시대는 오바스러운 갑빠에서 힘을 적당히 뺀, 좀더 편안하고 띨빵하고 순진하고 아픔을 간직한 안티 히어로가 필요하고 요구되어진다. 배달민족 민초들의 지고지순한 인기를 먹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중의 영웅 홍길동이 현재 그 존함 석자로 은행과 공공기관의 도우미로 나선 모습을 생각해봐라! 홍/길/동, 너무 친근하고 다정다감하지 않은가?
바로, 미국의 초특급 만화출판사인 마블 코믹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데어데블>은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고 창출된 블록버스터다. 게다가 데어데블은 마블 코믹스의 또 다른 히어로인 엄청 갑빠맨 <스파이더맨>, <엑스맨>과 견주자면 개발에 땀날 정도로 뛰댕겨도 상대가 안 될 만큼 초인치곤 상당히 가난한 콘셉으로 치장된 캐릭터다. 실례로, 나쁜놈들과 싸우다가 이빨 부러져 고통스러워 할 정도다. 불쌍한 넘!
매튜 머독(벤 에플렉)은 어릴 적 화학물질에 눈이 노출돼 시력을 잃는다. 대신 그는, 소리를 시각화시켜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청각과 후각 등 모든 감각 기관이 경이로울 만치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거기다 프리미엄으로 쌈박질까지 잘 하는 기술이 부여되고. 그러다 매튜는 조폭과 연루된 아버지가 그들에 의해 희생되는 순간을 목도하게 되고, 저 쳐 죽일 놈들에게 언젠가는 복수를 하겠노라며 굳건하게 다짐한다.
결국, 장성한 매튜는 낮에는 법 테두리 안에서 악과 점잖게 혈전을 벌이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밤에는 뻘건 쫄 타이즈를 착용한 채 곤봉 하나로 사악한 놈들을,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모토아래, 사정없이 박멸하는 정의의 사도 데어데블로 복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매튜는 얼굴도 이쁜 것이 무술도 잘 하는 엘렉트라(제니퍼 가너)에게 작업을 걸고 대 성공, 사랑하는 사이로 급진전한다. 하지만 이맘때쯤이면 늘 그렇듯 아주 나쁜 놈 킹핀(마이클 클라크 던컨)이 등장하고, 그의 사주를 받은 표창던지기의 명수 불스아이(콜린 파웰)가 이들 연인사이에 낑겨들어 모든 것을 엎어버리고 파토내 버린다.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데어데블>은 딱 적당히 팝콘을 아작아작 먹으며 볼 수 있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모양새를 갖춘 영화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게 표현됐지만 그러한 요소는 화려하고 MTV적인 촬영기법과 암울해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의 모습 속에서 적잖이 희석된다.
영화는 블록버스터답게 시각적 효과면에서 뛰어남을 보인다. 특히, 실명을 한 매튜가 귀로 이용해 형상을 재현해내는 비쥬얼은 마치 우리가 그의 안구에 위치해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데어데블>은 매튜와 데어데블의 사이를 오가야만 하는 자아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은근히 많이 노출한다. 자신이 밤마다 나가 단칼에 척결하는 정의로운 행동들이 혹 도덕적으로 그른 일은 아닌지, 복수심에 눈이 멀어 사리분별하지 못하고 마구 오바하는 건 아닌지. 영화는 이러한 자신의 이중성에 관한 내적인 고민을 외적인 장치들의 몸을 빌려 보여주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그가 밤마다 싸돌아다닐 때 입고 다니는 레드색의 쫄 타이즈, 그리고 타이즈의 머리부분을 보면 악마의 표식이라 할 수 있는 뿔이 달려 있다는 점. 고로, 그는 레드데블, 붉은 악마인 셈이다.
물론, 영화는 자신의 태생적 환경이 초대박성을 갈구하는 유전인자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지가 지를 못 믿고, 지 무덤을 지가 파는 건 아닌지 하는 매우 고민스러움을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액션 신 역시 <데어데블>은 휘황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철두철미하게 엮어내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다. <매트릭스> 무술 감독인 원화평의 동생이자 <미녀삼총사>의 몸동작을 안무했던 원상인이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이 상대적으로 빼어나서 그런지, 범상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단, 놀이터에서 사랑싸움을 하듯 펼치는 매튜와 엘렉트라의 아기자기한 대결 아닌 대결은 꽤나 인상적이다.
마빡에 별 표식을 달고 오도방정을 떨며 표창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불스아이와 덩치값 못하는 우두머리의 킹핀은 아쉽게도 카리스마가 부족해 영화의 재미와 긴장감을 깍아먹는다. 아마도, 있는 말 없는 말 다 갖다 붙이며 자기한테 개기는 얘들을 굉장히 뭔가 있게 악의 화신으로 치장하는 부쉬에게 감독이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2차원의 평면적 만화 캐릭터에서 배우의 몸을 빌려 육화돼 탄생한 <데어데블>은, 매튜가 적당히 정체성 고민하고 적당히 아크로바틱한 자세 시연한 것처럼 보는 이들도 적당히 즐기며 볼 수 있는 오락영화다. 하지만 데어데블를 우리의 홍길동처럼 마냥 친근한 고환 친구로서 옆에 두기에는 아직은 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