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넴은 기이한 존재다. 극과 극에 배치된 모순덩어리들이 맹렬히 질주, 서로 충돌해 수많은 파편들을 낳아도 고스란히 자신의 한 몸으로 쓸어 담아 다스릴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흑인들의 언저리에서 생성 발전된 랩이라는 음악의 영토 안에서 잔뜩 심기 어린 표정을 창백한 얼굴에 오버랩 시킨 채 백인인 자신의 표식을 명징하게 새겨 박아 놓는 행동방식. 지독한 욕설을 통렬한 언술 구조에 실어 아무리 내뱉어도, 심지어는 그 육두문자의 표적이 어머니일지라도, 기꺼이 그를 위해 순교했다가 다시금 부활해 그를 추앙하는 대중의 숭고한 의식.
이러한 현상이 하이브리드한 아이콘으로서의 에미넴을 웅변해주는 사례다. 이러기에 그는, 자신과 교감될 수 있는 주파수를 포착하면 머뭇거림 없이 심하게 진동하는 그 안으로 뛰어든다. 그러고는 짐짓 태연한 척하며 스스로만의 몸짓을 동반한 채 불온한 필설을 거침없이 뇌까린다. 누가 보든, 듣든, 말리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 예민한 촉수에 이번에는 영화가 감지돼 <8마일>이라는 비정규앨범을 지니고 그가 스크린이라는 낯선 무대에 서게 됐다.
하지만 가난한 백인 노동자인 지미는 역차별을 당하듯 클럽에 운집한 흑인들의 무자비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결국 입 뻥긋 한번 못하고 처절하게 패한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는, 거대한 선반기가 놓여 있는 허름한 공장으로 돌아가 서늘한 굉음을 위무 삼아 일한다. 도박판에서 만난 자신의 동창과 트레일러에서 함께 서식하는 가진 것 없는 알콜 중독자인 엄마(킴 베이싱어)와 어린 동생의 가련함이 버겁도록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비루한 환경에서 유일한 탈출구인 랩의 도주선에 불을 붙이고자 하는 고된 노동이기도 하다.
결국, 에미넴은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흑인 친구들의 사려 깊은 배려 덕에 다시 랩 배틀에 도전하게 되고,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흑인 관전자들의 몸과 마음을 마이크로 증폭된 목소리를 통해 서서히 관장하며 끝내 우승자로 등극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이 각박하게 말라비틀어져 있다는 사실과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에, 이긴 자로서의 잠깐의 여유도 누리지 않고 야간 업무를 위해 홀로 싸늘한 밤기운 속으로 어슬렁거리며 사라진다.
<8마일>은 에미넴의 과거를 소환해 재현한 자전적 영화이다. 하지만 늘상 우리가 봐 왔던 성공한 자들의, 더 성공하기 위한, 신화로써 도배된 그것과는 위배된다. 에미넴을 거창하게 포장하지도 않고, 그가 가진 자로서의 경제적 위치에 입성하는 그 어떤 모습도 영화는 그에게 부여해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빈자와 부자의 경계점을 의미하는 <8마일>은 그저 팍팍한 현실의 토대 위에서 자신의 삶의 의지라 할 수 있는 래퍼의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 한 젊은이의 한 때를 그리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층민의 거칠지만 소박한 정서를 자연스레 몸으로서 안고 있는 청년이, 자신은 물론이고 흑백의 계급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하나씩 하나씩 장애를 격파해가며 희망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일주일을 말이다.
에미넴이 고군분투하는 위와 같은 지난한 과정을 영화는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라는 명성은 온데간데없이 지리멸렬해지고 살풍경한 비루한 모습만이 삐거덕 남아 있는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보여준다. 곧, 이 도시는 역으로 에미넴이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기까지의 자양분을 제공한, 다시 말해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회의 부조리한 측면들을 고통스럽지만 일깨워줌으로써 그의 음악창작에 영감을 준 거대한 뮤즈와 같다.
이러한 배경을 등에 지고 에미넴이 전경으로 나서 래핑을 쏟아내기에 더욱더 힘 있게 그의 음악은 와 닿는다. 특히, 랩 배틀을 하면서 자웅을 겨루는 신은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랩이니 힙합이니 하는 용어들과 음악에 무지하더라도, 의사소통은 이루어지되, 친절하지 않은 쌍방의 신랄한 말 주고받음 속에서 튕겨 나오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히 가능하다.
분명, <8마일>은 천덕꾸러기 랩퍼 에미넴이 정점에 위치한 그의 영화이다. 하지만 보는 이들의 표정을 자못 심각하게 유도하지도, 그렇다고 맥없이 풀어놓지도 않게끔 균형감 있게 영화를 믹싱하고 스크래치하고 되새김질하며 조율한 감독, 커티스 핸슨의 영화이기도 하다. 수많은 장르들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섭렵해왔던 커티스 핸슨은 전과는 다른 지점에 위치한 영화 <8마일>을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등재시킴으로써,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이야기를 힘 있게 던질 줄 아는 천재 감독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키게 됐다.
흑인음악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있어 음악은 하나의 생의 의지를 제공하는 도구 이상의 그 무엇이다. 랩 역시 이 뿌리의 갈래에서 파생된 장르이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영역에서는 하나의 생활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헌데, 미국 사회의 주류이자 기득권자라 불리는 백인 에미넴이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허덕이다가 어느 날 우뚝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에미넴은 백인 앞에 따라 다니는 수사어가 당최 어울리지 않는 존재이다. 빈민가 출신임과 동시에 흑인 문화 안에서 많은 것을 부대끼며 경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윌 스미스와 마이클 잭슨이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의 정서로 다가오듯이 말이다. 그만큼 현재 자본주의의 속성은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여하튼, 흑인음악의 일종인 랩이 정치적인 성격을 지닌 무거운 가사로 돼 있을지언정 그것의 형식과 표출은 육체적인 흥겨움과 함께 즉자적인 쾌락을 수반하게 돼 있다. 그러므로 <8마일>의 에미넴이 보여 준 여러 행동방식을 짐짓 심각하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힙합을 듣듯 즐기며 마음의 육체를 나름대로 흔들기만 하면 된다. 잔뜩 노이즈를 먹인 일렉트릭 기타를 긁어대며 실리는 앙칼지며 다소 신경질적인 하이톤의 래핑 Lose Yourself에 몸을 저당 잡힌 채.
그러다 시종일관 읊어대는 그의 뻑(Fuck)! 뻑! 거림에 당신 역시 감염돼, 영화 <8마일>에 완전 뻑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