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추천해 드릴 비디오는 조금 특별하다 할 수 있다. 바로 다음 주에 개봉할 에미넴의 자전적인 영화 <8마일>의 감독 커티스 핸슨의 전작을 소개코자 하기 때문이다.
2000년도에 출시된 <원더 보이즈>는 언제나 그러했듯 극장에 얼굴 한번 내밀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비디오 가게로 강등된 작품이다. 하지만 랩의 각운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 넣어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관장할 <8마일>을 접하기 전에 한번쯤은 꼭 들춰볼 만한 매력을 가진 영화이다.
미국 출신의 커티스 핸슨은 섬뜩한 스릴러물 <요람을 흔드는 손>과 고전적 필름느와르를 현대적으로 잘 각색해 선 보였던 < L.A 컨피덴셜 >의 감독이다. 하지만 그는, 불행인지 요행인지, 자신의 이름보다는 작품으로서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인물이다.
영화는 한 때 신동(wonder boys)이라 불리며 촉망 받던 그레디(마이클 더글라스)교수의 전성기 시절은 대부분 생략하고, 언급만 넌지시 짧게 던져준 채 포문을 여는 블랙 코미디다. 그러고나서 <원더 보이즈>는 시간이 흘러감에 육체와 정신마저 노쇠해져 권태기에 이른, 되는 일 하나 없는, 나약한 지식인상의 현재의 그레디를 축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여준다.
좀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마누라가 집 나가버린 그레디의 콩가루 집구석, 동료교수 부인과의 간음에 의한 임신사실 확인, 한 집에 같이 사는 여제자의 야시러운 꼬리질, 기행을 일삼는 제자 제임스(토비 맥과이어), 그리고 게이, 복장도착자와의 우연한 만남, 또 마약과 연루되며 석연치 않은 남의 집 견공의 죽음을 목도하는 등 하등 관계없어 보이는 이 복잡다단한 사건들이 그레디가 어느 날 열린 일상적인 파티에 참석하면서부터 단 며칠 동안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그레디를 피 말리게 한다는 것이다.
<요람을 흔드는 손>과 <리버 와일드>를 통해 이미 평온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 안에서 갑작스럽게 돌출되는 불행과 기이한 일들을 할리우드 방식으로 스릴감 있게 묘사해 보여주었던 커트슨 핸슨 감독은, <원더 보이즈>에서도 예의 미국중산층의 가정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는 전작들에서 선보였던 극적인 장치나 스릴러적인 요소들이 실종되어 없다. 다시 말해, 커티스 핸슨 감독은 하나하나 무겁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의 부조리해 보이는 사건 줄기들을 어느 한 쪽에만 비중을 두어 치중하지 않고, 일상적인 일들로서만 가볍게 터치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언뜻 미국출신답지 않은 미국감독 로버트 알트만과 풀 토마스 앤더슨이 자주 보여줬던, 복잡한 스토리에서 핵심 갈래를 잘도 뽑아내는, 연출력의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내용적인 면에서는 미국 중산층의 어두운 초상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아이스 스톰>이나 <아메리칸 뷰티>와 같은 비극적 드라마에서 흡입할 수 있었던 유사한 정서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더 보이즈>는 결정적으로 이들 영화와는 달리 무겁거나 암울하거나 비극적으로 인물과 풍경을 묘사해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황당할 정도로 비껴가는 세상사에 대해서, 중년층의 사람들이 어떻게 심리적 갈등과 내면적 강박증을 얼굴과 행동으로써 표출해내는지 다소 엉뚱하고 희화적으로 때로는 궁상맞게 보이게끔 순간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묘사가 오래 동안 가슴 깊은 곳에서 절실한 애환의 정서로 침잠돼 서식할 수 있도록 파고드는 힘이, 바로 <원더 보이즈>만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