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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찾아 삼만리
비밀투표 | 2002년 12월 20일 금요일 | 이메일

대선으로 들썩거리는 요즘, 이보다 더 궁합이 잘 맞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영화 한편이 찾아왔다. 바로 이란의 바박 파야미 감독의 <비밀투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문득 떠올리게 하는 이란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게 한 바박 파여미는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의 영예를 안긴 <비밀투표>에서 투표를 통해 이란 사회의 부조리와 일면을 깊이 있게 꿰뚫어보고 있다.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 낡은 군용침대를 곁에 두고 번갈아 보초를 서는 군인들에게 일상은 한없이 지루하고 무료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로부터 상자가 뚝 떨어진다. 바로 투표상자. 그리고 상자와 함께 도시로부터 온 여성 선거관리원이 나타난다. 밀수꾼 잡기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군인은 사람을 설득하는데 일가견 있는 선거관리원과 함께 유권자들의 투표를 받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황당무개한 일들이 이어진다. 후보가 남자라 사진보기 부끄러워 투표 못하겠다는 여성, 온 동네 여자들 다 데리고 와서 대표로 투표하겠다는 마을대표, 물건을 사야 투표하겠다는 장사꾼, 신만이 우주를 구원한다며 신에게 투표하는 광신도까지.. 과연 이들은 100% 투표율 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풍자코미디와 함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 <비밀투표>는 선거관리원과 군인의 좌충우돌 투표여행을 통해 관객들에게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바로 여성차별이나 문맹, 열악한 복지환경 등 이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투표’를 통해 임원을 결정하는 행위 자체가 과연 민주적인지, 그리고 그렇게 선발된 결과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 것. 남성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금기시되어 있는, 인습과 전통이 중요시되는 오지의 여성들. 이렇게 여성에게 보수적이고 편파적인 이란 사회에서 그들의 권리를 대변해줄 후보자는 나올 수가 없다. 남편이 죽어도 여자라는 이유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사회의 발전을 위해 남자후보들로만 이루어진 선거에 투표하라고 하는 것은 과연 민주적인 일일까.

영화는 무지하지만 냉철한 군인을 통해 법의 맹점에 대한 질문 역시 수 차례 던진다. 법을 어기는 밀수꾼들이 투표할 권리가 있는 투표라면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군인의 이야기에 선거관리원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더니 이번엔 하루 종일 법을 위해 돌아다닌 선거관리원이 사막 한가운데의 신호등의 파란불을 무시하라고 졸라대자 그는 “당신은 종일 법을 위해 돌아다녔어요. 근데 이제 보니 스스로 법을 어기려 하는군요.” 라고 말한다. 정해져 있는 원칙이 모든 환경과 상황에 적합하지는 않다는 것, 이것은 파여미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간단하지만 깨닫기 어려운 진실이다.

<비밀투표>는 이란 영화 특유의 일상적이고 잔잔한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일상 그 자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에 주력했던 기존 영화들과 달리 유머러스함과 판타지적인 묘사가 적절하게 혼합된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이란영화의 네오리얼리즘 흐름에서 이탈한 영화답게 하늘에서 떨어진 투표상자와 사막 한가운데의 신호등, 갑자기 나타나는 비행기 등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현실을 꼬집는 가운데에 삶의 동화를 선사한다. 100% 야외 촬영으로 이루어진 정감가는 색감의 화면과 비전문 배우들의 어색한듯 하면서도 현실의 내음이 넘치는 연기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이란의 섬에 있는 한 오지의 마을로 인도한다.

1 )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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