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창작하는 뮤지션,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그루피(우리나라로 치자면 빠순이 정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이들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야합을 유도하는 저널리스트. 영화는 세 개의 축으로 서로 의지하고 있는 이들을 록의 중흥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초반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잼의 형식을 빌려 그들만의 짧지만 묵직한 여정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영화 <올모스트 훼이모스>는 그다지 꾸밈이 없는 영화이다. 제목부터 봐라! 여간해선 발음하기 힘든 단어가 하나도 아니고 둘임에도 그냥 밀어부쳤다. 웬만하면 작명해서 나올 제목이었지만 극장에 얼굴 한번 내밀지 못한 관계로 원제목 그대로 출시됐다. 어쨌든 감독 카메론 크로우의 전작인 <클럽 싱글즈>에서도 느낄 수 있듯, 그는 극적인 장치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때는 1973년, 카메론 크로우의 자아라고도 할 수 있는 주인공 윌리암(패트릭 푸짓)은 청교도적인 윤리관을 지니고 있는 엄마(프란시스 맥도먼드, <파고>의 그 여인)와 그와는 상반되게 히피적인 삶을 향유하는 누나랑 함께 살아가는 범생이 부류의 15살 소년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모녀간의 가치관 차이는 항상 집안에 화근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일례로 윌리암의 누나가 사이먼 앤 가펑클의 LP를 몰래 사오다 엄마에게 들키면, 그들의 음악은 마약과 섹스에 다름 아니라고 엄마는 그들에게 다그친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랩의 창시자인 서수남과 하청일도 폭력과 욕설의 전도사이다. 결국, 옥신각신 하루가 멀다하고 엄마와 부딪히던 누나는 집에서 독립하게 된다. 짐을 싸던 누나는 동생인 윌리암에게 작별의 한 마디를 건네며 떠난다. “침대 밑에 있는 LP를 들어봐!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누나의 마지막 부탁을 받아들여 침대 밑을 들추자 그곳에는 레드제플린, 예스, 더 후, 블랙사바스 등 70년대 록의 아우라가 진하게 배어있는 앨범이 있었다.
영화는 로드무비와 성장영화의 형식을 빌려 이들의 3주간의 일정을 고스란히 담는다. 70년대의 록 음악이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올모스트 훼이모스>는 뮤지션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무대 뒤 언저리에서 배회하고 있는 그루피나 기자인 월리암에게 영화는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 또는 뮤지션들의 사생활을 통해 자신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 나가는지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당시의 음악이 상당히 허무적이고 시대 역시 열패감에 젖어 있던 시대이니 만큼 어둡게 영화를 그려내지 않았을까 생각도 되지만, 감독은 그러한 기대를 무시해 버리듯 별반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섹스와 마약이 판을 치던 시대였지만 그곳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아련한 향수가 일어나게끔 유도하며 보여준다. 이러한 흔적은 결말부분에서 역력하게 나타난다. 어린 나이에 스타들의 이면에 깔린 잔혹한 현실을 윌리암은 목도하지만, 그는 우리들의 예상을 배신하고 다시 처음의 범생이로 돌아가 엄마와 별 탈 없이 지내며, 게다가 누나마저 (돌아)와, 만찬을 즐긴다. 이건 나쁜 의미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마무리가 전반이나 중반의 이야기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모를까, 다행히도 별다른 상처를 내지 않기에 그다지 크게 염두해둘 필요는 없다.
<올모스트 훼이모스>는 윌리암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어린 나이에 롤링 스톤지에 글을 기고했던 감독, 카메론 크로우의 자서전적인 영화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회고적인 시선으로 그려졌고, 특별한 비판의식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름지기 회상이나 추억은 나쁜 기억마저 계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음악필드에서 직접 뛰었던 그였기에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남다르다. 더불어 영화의 음악 담당자이자 그의 부인인 낸시 윌슨은 그 유명한 여성 밴드‘하트’의 멤버이다.
영화는 미 비평가협회에서 수상도 하고 아카데미에서 각본상도 수여받았던 출중한 작품이다. 비록 한국에서는 찬밥신세로 전락했지만. 영화제 수상을 차치해도 <올모스트 훼이모스>는 분명 볼 만한 가치가 그득한 영화이다.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소리를 내는 LP의 감동어린 모습은 물론, 레드제플린에서부터 엘튼 존까지 흐르는 수많은 70년대산 음악들,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데 크게 일조한 초짜배기 답지 않은 신인 연기자와 농익은 중견배우들의 호연. 이러한 모든 것을 모난 데 없이 완만하게 조합시킨 감독의 연출력. 어디 하나 크게 빠질 데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한다면 또는 록 비평가 쪽에 뜻이 있다면 혹은 그루피적인 성향이 있으시다면, 필히 이 영화를 만나보시길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사족-음악이 전면적으로 깔리는 영화이니 만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DVD로 관람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