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가고 싶지만 경비가 모자라 안절부절하는 여고생 리사. 그녀를 우연하게 만나 비행기 삯을 보태주고자 고군분투하는 또래 소녀 존코와 라쿠. <바운스>는 이 파릇파릇한 세 여고생의 하루동안의 생활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원조교제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가 드러내는 물리적 시간이야 24시간이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 동안 적폐돼 온 일본사회의 치부가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영화는 정육점 조명 같은 시부야의 불야성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하는 고갸르들의 특이한 의복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시작한다. 고갸르란 순대 껍질마냥 주름이 잡힌 루즈 삭스(헐렁한 양말), 검게 그을린 얼굴, 키높이 구두를 무색케하는 18센티미터의 굽 높은 신발로 무장 한 채, 호사스런 물건을 쟁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을 일컫는 신조어다. 상징적인 은어야 낯설지만, 사회의 음침한 한 단면을 나타내는 그 의미는 퍽이나 우리에게도 낯익은 그것이다.
<바운스>는 언뜻 민감한 소재 때문에 성적으로 시각을 미혹시키는 질펀한 장면들이 즐비한 그저 그런 영화가 아닐까 충분히 생각될 수 있다. 게다가 일본 영화라는 딱지가 붙어 있기에 그러한 상상은 응당 정당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뭇 남성들이 기대하는 그런 것과 영화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선정적이지도, 어둡지도, 우울하지도, 끈적끈적하지도 않게 <바운스>는 원조교제 여고생들을 다룬다. 마치 한 편의 청춘물을 보듯 밝고 경쾌하게. 이런 활기참 속에는 대동아 전쟁의 전범과 부패의 대표주자 관료 등을 비아냥 거리는 비판 의식이 무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기성세대의 속물적 근성 또한 고갸르들은 직설적으로 가차없이 재단한다. <가미가제 택시>, <쥬바쿠> 등 일본 사회를 줄곧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던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작품다운 측면이다.
원조교제라는 선정적인 이슈를 가지고 10대 원조 소녀의 의식이나 행동, 우정을 나름대로 천착하고, 그 안에서 일본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예봉을 휘두르는 등, 분명 영화는 여러 가지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기성세대는 나쁜 넘으로, 고갸르들은 그들을 무찌르는 정의의 사도처럼 도식적으로 갈라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때로는 무디게 한다. 그들의 절절한 우정 또한 연결고리가 그다지 튼실하지 않기에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리고 화사한 배경아래 세 여고생들이 거리를 노닐며 상큼한 주제가가 깔리는, 예의 볼 수 있는 노래방 화면(용서하시라! 이러한 비유를), 장면은 그만 빈번한 등장으로 인해 오히려 영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만다. 리사가 뉴욕으로 떠나며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결말 역시, 인간극장을 연상케 하는 닭살스런 휴먼 시퀸스를 선 보임으로써, 어딘가 뜬금 없는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1997년도에 일본에서 개봉한 <바운스>는 그해 영화제를 싹쓸이 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반적 환경으로 인해 빠른 시일 내에 간판 내리고 비디오로 직행할 예정이라는 말이 있다. 하오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거동을 빨리 움직이심이 좋을 성 싶다. 그럼 당연 영화는 인동초와 같은 원조 소녀들처럼 오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