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장이나 중년 카바레에 처음 발을 디딘 초짜라면, 여지없이 춤 선생이나 아님 제비사내로부터 전수받는 초식 비급이 있으니... 그것은 원활한 하체 움직임을 위한 유기적 메커니즘이자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슬로우~ 슬로, 퀵! 퀵!'의 기본 스텝 되겠다. 한 때, 이와 같은 필살기적 비법을 가진 남정네들에 의해 우리나라 지하세계의 업소 무림은 평정되었었다. 하지만 불온한 시대의 환경에 따라 한반도 안에서는 더 이상 공인되지 못한 채 이 스텝은 서서히 사장되어 버렸다.
허나, 춤바람은 세계적으로 공인받은 인간내면의 욕망 중에 하나 아니겠는가? 하여, 글러벌한 시대의 절실한 요구에 따라 왜곡. 단종 되었던 이 풀뿌리운동은, 암암리에 자력갱생해 일본 찍고, 대만 찍고, 멀리 대륙의 한쪽 자락에 위치한 홍콩에서 턴하지 못하고 안주하였다. 그러나 댄싱보다는 활극무비에 더더욱 미쳐있었던 홍콩인들은 이 스텝을 영상으로 접목시켜 발굴해놓는 영민함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으니, 그 장본인들은 바로 오우삼. 서극이 아니었겠던가?
2000년도에 제작된 <순류 역류>는, 그간의 홍콩영화들이 별반 재미를 못 본 탓인지, 각계전투로 소리소문없이 포복하여 비디오가게 고지까지 당도한 총싸움 활극 영화이다. 다들 알다시피,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오우삼 따라 할리우드 간 서극은, 늘상 홍콩감독들과 함께 한 장 클로드 반담과 두 편의 영화를 제작한다. 하지만 비평이나 흥행 쪽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순류 역류>는 오우삼이가 외국에서 잘 나감으로써, 여러 가지로 마음도 아프고 삐졌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졌던 서극이, 자신의 텃밭인 홍콩 집으로 돌아와 와신상담하여 연출한 걸작이다. 물론 오다리이자 기름 한 드럼인 클로드 반담은 안 데려 오고, 자신의 필드 안에 위치한 배우들과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제작비는 모두 콜럼비아에서 대 주었다고 한다. 수개월 전, 강우석 감독의 차기작인 <실미도>도 콜럼비아에서 전액 투자하기로 했다던데, 이 친구들 배팅 하나는 잘 하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순류 역류>의 내용은 사설경호업체 보디가디인 타일러(사정봉)가 우연찮게 정통실력파 킬러 잭(오백)과 만나 우정을 나누어 먹으면서, 킬러를 암살하기 위해 출장나온 조폭들과 여기저기 뒹글러 다니면서 총싸움을 펼친다는 내용되겠다.
영화에는 홍콩의 지난한 현재상황을 우회적으로 어루만져주는 철학적인 멘트도 등장하고, 홍콩느와르적인 남자 대 남자의 찐하면서도 상투적인 사나이 우정 구도도 나오지만,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별반 논리적이지 못 하고, 설정상황도 여기저기 구멍 난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난, 본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니다 싶은 시퀸스는 다음과 같다. 빌딩 안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식으로 싸우는 와중에 만삭이 된 킬러의 마누라가 총알이 뿅뿅 날아다니는 순간에 산통을 호소하게 된다. 그러자 옆에 있던 타일러가 킬러를 대신해 아기까지 받아주고, 무지막지하게 총알로 탯줄을 끊어준다. 그것도 모자라 방금 탯줄 커팅식 한 우리의 출산모가, 언더웨어도 채 입기 전에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나쁜 놈들을 향해 작렬하는 총알을 뿜어대는 하이코미디 장면. 이건 좀 심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하는 영화의 묘미는, 상하좌우 및 없는 공간까지 200%로 활용하며, 단계적으로 잡아내 껴다 맞춘 영상미에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순류 역류>의 장면들은 무지하게 빠르고, 기기묘묘하고, 정신없다. 와이어 액션과 하이테크닉한 SFX 장면, 가로.세로의 분할화면, 와이프(한 장면이 기존의 장면을 살짝 밀면서 등장하는 편집법)기법, 그리고 <매트리스>나 <아바론>, <스워드 피쉬>에서 보았던 '정지화면 360돌기 기법' 등이 넘실대는 카메라 앵글과 완전 끗발나는 궁합을 보이며, 우리들을 극락왕생의 영상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다.
<순류 역류>가 기존의 홍콩액션 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은 또 있다. 바로 논리적이지 못한 화면과 화면의 결합이다. 갑작스럽게 총구 내부와 사람 얼굴마냥 터져버리기 직전의 뻘겋게 달아오르는 수류탄의 외관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등 생물이 아닌 것들을 마치 헐떡헐떡거리며 숨쉬는 유기체마냥 잡아내어 예상치 못한 곳에 삽입해 우리에게 내민다는 것이다.
비논리적이고 복잡한 줄거리는 영화의 흠이지만, 거꾸로 논리적이지 못한 당 영화의 스타리쉬한 화면은 매우 기이하고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황홀경을 우리들에게 주입하는 장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후반부 닭장 집 같은 고층 아파트에서 20여 분 동안 펼치는 아크로바틱한 와이어 스펙터클은 가히, <와호장룡>의 대나무 칼싸움 씬과 거미줄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스파이더 맨>과 비견될 정도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화려한 하이테크닉의 '영상미'가, 화려함만이 난무하는 허접 영화로 평가 절하될 수도 있었던 <순류 역류>는, 서극 예전의 아우라와 새로운 연출기법 덕택에, 근간의 홍콩영화 중에서는 단연 발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