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훌쩍 지나고 조금씩 겨울 냄새가 풍기고 있다. 둘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혼자인 이들에게는 옆구리가 허전한 계절이다. 함박 웃음을 뿌리며 다니는 연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은근히 질투가 나기도 하고 '난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완전히 단련이 됐거나 해탈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런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들에게 11월은 빼빼로 데이와 함께 쓸쓸하기만 하다.
이상하리만치 11월에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많이 선보이고 있다. 쌀쌀한 바깥에서 만나지 말고 극장에서 데이트를 하라는 뜻일까. 11월에 만나는 사랑이야기. 그리고 영화 속 섹스이야기를 만나보자. 연인들을 위한 가이드로 받아 들여도 좋고, 나 홀로 족에겐 위안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스크린과 함께하는 11월은 사랑과 섹스의 계절이다.
■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 동성을 사랑해 본적 있나요?
한국영화 <로드무비>는 비교적 심각한 얼굴로 남자간의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다. 이와는 다르게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여성간의 동성애를 가볍고 발랄하게 그려낸 시트콤 분위기의 로맨틱 코미디다.
릴케의 글귀로 만난 두 여자가 조금씩 우정을 쌓아가고 그것이 사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내고 있는 감독의 재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그간 '동성애'하면 심각하고 우울하고 무거운 느낌으로 그려지곤 했던 이야기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유쾌하게 풀어간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운드>같은 질펀한 레즈비언 섹스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서로의 몸을 탐하다가 결국엔 섹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재미있는 영화. 티끌만큼도 동성애에 대한 불편함이 느껴지지도 않고 후에 모든것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도 이 영화만의 장점.
■ 좋은걸 어떡해! : 어쩌면, 아멜리에 두번째 이야기가 될 수도...
지난해, <아멜리에>로 세계를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오드리 토투가 예의 밝고 명랑한 미소로 돌아왔다. <좋은걸 어떡해!>는 이제 오드리 햅번의 후예라는 격찬을 받고 있는 오드리 토투에게 전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식 로맨틱 코미디이다.
유망한 패션모델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생활 패턴과 환경이 너무나도 다른 남자를 만나 서로 이해하고 닮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사랑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포스터에 그려진 싱그러운 초록빛 만큼이나 상큼하게 담아내고 있다. <아멜리에>가 그랬듯 사랑도 섹스도 삶의 한 부분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어 사랑과 섹스에 대한 판타지를 가졌던 이들을 무안하게 하는 작품. 영화를 보고 나올때 발걸음이 경쾌하게 바뀌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 밀애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변영주 감독이 선보인 <밀애>는 철저히 여성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도 그랬지만 미흔(김윤진)이 받은 상처와 그 상처가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격정적인 사랑과 함께 그려낸 <밀애>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솟아나는 육감적인 포스터부터가 범상치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남편이 외도한 사실에 대한 충격으로 삶의 끈을 헐겁게 쥐고 있던 여인에게 나타난 섹시한 시골마을 의사는 생활의 활력이 되고 쾌락의 유희가 되며 새로운 고통과 갈등을 유발한다.
영화 속에서 수차례 펼쳐지는 섹스신은 우아하고 탐미적이며 신비롭기까지 하다. 김윤진의 매끈한 다리와 이종원의 박력넘치는 엉덩이가 넘실대는 스크린은 촌스럽거나 과장되기 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386세대의 원죄의식을 고스란히 담아낸 <밀애>는 한폭의 세련된 유화를 보는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불륜으로 만들어진 사랑에의 매혹적인 향기를 뿜어낸다.
■ 위험한 유혹 : 남자들이여 함부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라
이 영화의 후광에는 먼저 "전미 박스오피스 1위"라는 타이틀이 있다. 전학 온 여학생의 음흉한 눈빛. 그녀의 등장에 학교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녀가 관심을 보이는 남자는 이미 임자가 있는 수영 유망주. 결국 집요하고도 뇌살적인 그녀의 유혹에 이끌려 섹스를 한 남자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마음에도 없는 '사랑해'라는 말을 잘못 던졌다가 패가망신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위험한 유혹>은 오랜만에 등장한 청춘 섹스 스릴러 영화다.
티없이 파란 수영장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섹스 신은 스릴러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양념 역할로 부족함이 없으며, 앞으로 다가올 비극에 대해 긴장감을 더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악녀였을까? 아니면 불의의 사고가 빚어낸 정신적 상처가 너무 큰 탓일까? 해답은 영화 속에서 찾아 보시길.
■ 스위트 알라바마 : 어떤 남자가 더 어울릴까요?
줄리아 로버츠, 카메론 디아즈 그녀들의 무기는 늘씬하고 매혹적인 몸과 부서질 듯 시원하게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미소에 있다. 때문에 그들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누구보다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이제 그 자리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으니 너무도 평범한 얼굴에 특별한 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유부녀 리즈 위더스푼이 그 주인공이다.
<금발이 너무해>로 대박을 터뜨린 리즈 위더스푼은 신작 <스위트 알라바마>로 다시금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로 회귀를 선언했다. 물론 겉 보기엔 그냥 로맨틱 코미디 같지만 사실 '알라바마 만세'를 외치고 있는 이 작품은 리즈 위더스푼의 사랑 찾기 만으로도 용서가 되는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사랑이야기다. 도회지에서 프로포즈를 해 온 남자와 알라바마에 살고 있는 옛 남편 가운데 이제 그녀는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그녀의 사랑을 쟁취한 남자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