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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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진유
배우: 김혜옥, 저스틴 H. 민, 박대호, 공민정
장르: 드라마
등급: 전체 관람가
시간: 125분
개봉: 10월 28일
간단평
건축가 남편이 손수 지은 집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춘희’(김혜옥)는 오랜 보금자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벼르던 여행을 앞두고 남편은 홀연히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춘희는 그가 남긴 자동차와 그랜드 피아노를 챙겨 작은 아파트로 향한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1층 아파트에 피아노를 들이려면 창가의 나무를 잘라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 차마 나무를 베지 못해 난감해하던 춘희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나 자신의 집에 피아노를 두자고 제안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독일로 입양됐다가 친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민준’(저스틴 H. 민)이다.
코다(CODA·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 소녀 ‘보리’를 통해 한 가족의 일상을 따뜻하게 그려낸 <나는 보리>(2020)의 김진유 감독이 <흐르는 여정>으로 다시 관객을 찾는다. 강릉 출신인 감독은 이번에도 주문진을 비롯한 고향의 익숙한 풍경을 배경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나는 소박한 정을 포착한다. 남편을 떠나보낸 노년 여성과 자신의 뿌리를 찾아온 이방인 청년, 어려운 형편에도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워가는 ‘성찬’(박대호), 그리고 춘희의 여정에 동행하는 인물(공민정)까지. 저마다 다른 사연과 삶의 무게를 지닌 이들이 우연히 만나 서로의 일상에 스며든다.
영화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삶의 한 부분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존엄사와 해외입양,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고민까지 묵직한 소재를 품고 있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한결 따뜻하다. 인물들의 사연을 지나치게 비장하게 끌고 가거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은 까닭이다. 때로는 유머로 무게를 덜어내고, 때로는 함께 밥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순간에 머문다. 거창한 위로나 약속보다 잠시 곁을 내어주는 마음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전한다.
춘희가 간직한 그랜드 피아노에는 남편과 함께한 추억이 깃들어 있다. 듣지 못하는 남편이 어느 날 피아노를 사 왔는데, 건반을 띵동거리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는 춘희의 회상이 정겹다. 소리를 듣지 못해도 피아노 앞에서 행복해하던 남편의 모습이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감독 자신이 코다인 김진유는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농인의 삶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부부가 함께한 평범하고 다정한 기억으로 그려낸 점이 좋다. 남편이 남긴 피아노가 뜻밖의 인연을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강릉 출신 감독의 시선으로 포착한 지역의 풍광도 영화의 정서를 풍성하게 만든다. 새벽의 바닷가와 벚꽃이 만개한 도로, 익숙한 동네의 골목과 거리까지, 굳이 아름답게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들이 화면을 채운다. 관광지의 화려한 면모보다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가까운 풍경이다.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지역의 정취는 <나는 보리>에서와 마찬가지로 편안한 위안을 전한다. 때로는 풍경이 대사보다 많은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김혜옥은 상실의 슬픔을 품고도 일상의 유머와 온기를 잃지 않는 춘희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저스틴 H. 민과 박대호 역시 각자의 사연을 지닌 청년들의 모습을 무리 없이 소화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앙상블을 완성한다.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가 끝까지 부드러운 호흡을 유지하는 데는 배우들의 편안한 어우러짐도 한몫한다. 죽음과 이별을 다루지만 슬픔을 앞세우지 않고, 인연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감동을 서둘러 끌어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눈앞에 보여주거나 대사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고 호흡하게 만드는 영화다. <나는 보리>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포착했던 김진유 감독의 시선은 삶과 죽음의 경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층 깊어진 이야기에도 특유의 따뜻함은 여전하다.
2026년 10월 28일 수요일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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