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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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승오
배우: 기주봉, 하윤경, 양말복, 원미원
장르: 드라마, 가족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시간: 105분
개봉: 9월 16일
간단평
단역배우로 오디션을 전전하는 ‘정미’(하윤경)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고집불통에 홀로 사는 아빠 ‘철택’(기주봉)이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만사를 제치고 병수발에 나선 정미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지쳐간다. 한편 전원에서 유유자적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던 엄마 ‘현숙’(양말복)은 형제들의 성화에 노모 ‘옥남’(원미원)의 구순 잔치를 자기 집 앞마당에 차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작업장에서도 몰래 술을 마시는 아빠, 넓은 전원주택에서 홀로 심신을 단련하며 사는 엄마, 귀신 단역을 맡아 촬영장을 전전하는 딸. 같이 산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더 긴 세 사람에게 가족은 가깝고도 먼 존재다. 그런데 부모가 늙고 병들면서 관계의 무게가 달라진다. 어느 순간 자식은 부모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 되고, 부모는 자식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철들 무렵>은 그 불편하고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미화하지 않는다.
특히 정미가 철택의 병간호에 나서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가 생생하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아빠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앞서지만, 수술 이후 간병이 일상이 되면서 걱정과 안쓰러움 사이로 피로와 짜증이 비집고 들어온다. 아픈 와중에도 고집을 꺾지 않는 아빠와 결국 타박을 쏟아내는 딸의 모습은 남의 집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니까 감당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마냥 기꺼울 수만은 없는 가족의 양가적인 감정을 현실적으로 포착한다.
현숙 역시 비슷한 문제에 놓인다. 홀로 사는 삶에 만족하던 그에게 형제들은 구순의 노모 옥남과 함께 살 것을 은근하지만 집요하게 압박한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선을 긋지만 늙은 엄마를 완전히 외면하기도 어렵다. 철택을 돌보느라 지쳐가는 정미가 현숙의 딸이라면, 현숙 역시 옥남의 딸이다.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와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런 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최고령자인 옥남이다. 자식을 키우고 남편을 병수발하며 평생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온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다. 자식에게 기대 남은 생을 보내기보다 단호하게 자유를 택하는 모습은 ‘노부모=돌봄의 대상’이라는 익숙한 구도를 비튼다. 모임에서 박완서의 소설을 낭독하는 모습에는 질곡의 근현대사를 통과해온 여성의 삶도 겹쳐진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할머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옥남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철택의 형과 손자가 또 하나의 세대를 보탠다. 손자를 돌보면서 틈만 나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할아버지와 그런 어른들의 행동을 골똘히 바라보는 어린 소년이다. 이 아이까지 더해지면서 <철들 무렵>에는 정미, 현숙과 철택, 옥남에 이르는 4세대의 풍경이 완성된다. 누군가는 부모를 돌보고, 누군가는 자식에게 돌봄을 받으며, 누군가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란다.
영화 <이장>(2019)에서 아버지의 묘를 옮기기 위해 막내 남동생을 찾아 나선 누나들의 해프닝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를 들여다본 정승오 감독은 <철들 무렵>에서도 가족과 세대의 현실을 세심하게 응시했다. 내 이야기 같고 우리 집 이야기 같은 가족의 얼굴. 어느 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공감의 지점도 달라진다. 정미의 고단함에 마음이 갈 수도,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현숙의 처지에 공감할 수도, 이제는 자식에게서조차 자유롭고 싶은 옥남의 선택이 가장 선명하게 남을 수도 있겠다.
2026년 9월 14일 월요일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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