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게임하면서 히로인 때문에 가슴아파 했던 적 이번이 처음입니다.
유우나가 너무나도 좋아서.. 하루종일 유우나 생각만 한적도 있습니다..ㅠ.ㅠ
루리웹 추천게임게시판. 아이디 : baka0327”
‘유우나’는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 대작 <파이널 판타지 X>의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게다가 무척 아름다운 외모(와 마음까지!)로 수많은 게이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게임의 세계에서만 머물도록 유혹한다.
영화는 게임이 아니며, 게임도 영화는 아니다. 물론 모든 장르와 현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크로스오버되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런 이분법은 가당치도 않겠다. 어두운 극장에서 모든 것을 내어 맡긴 채 무방비 상태로 커다란 스크린을 응시하게끔 강제하는 관람 방식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정의 요동은 게임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번쯤은 영화에 나오는 멋진 스타를 보고 음흉한 상상을 하며 짜릿함을 느낀다. 남녀 주인공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장선우 감독의 키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무성영화 스타일의 코믹한 자막들(하지만 관객들의 부담없는 웃음을 자아내지는 못했다)과 유치하게 날리는 눈발, ‘목포의 눈물’이 구슬프게 깔리는 의도적인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게임의 오프닝 동영상의 역할로 충분하다. <성소>게임의 줄거리와 미션, 그리고 어떻게 하면 미션을 달성하고 게임에서 클리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어김없이 라이터를 한 개도 팔지 못한 성냥팔이 소녀는 배가 고픈 나머지 부탄 가스를 마셔 허기를 달래며 설정대로 얼어죽는다. 이때 성소가 게이머를 마지막으로 떠올리게 되면 게임 승리이다.
게임방 아르바이트 희미(임은경)을 짝사랑하고 있는 중국집 배달부 주(김현성)가 한겨울 길거리에서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과 동시에 희미와 꼭 닮은 성냥팔이 소녀(임은경)를 마주치고 라이터를 사게 되어 게임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 Stage 1이며 게임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성소>의 인트로이다. 중국 최초의 성전환자이자 현대무용가인 진싱이 연기하는 레즈비언 캐릭터 라라는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의 이미지를 공개적으로 차용하였다.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줄 하나에 의지하여 벽을 빠르게 뛰어다니며 총을 난사하고, 나이트클럽 장면에서는 고혹적인 춤을 추며 시스템의 하수인 오비련(정두홍) 일당을 몰살시키는 멋진 액션을 보여주는데 인상에 깊이 남는 시각적 즐거움이다. 그 밖에도 현실에서는 주의 친구인 프로게이머이지만 게임에서는 시스템에 고용되어 주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이중적인 이를 래퍼 김진표가 연기하며 성냥팔이 소녀가 사랑했던 전설적인 뮤지션 가준오 역할은 10대 소녀의 우상 강타가 맡아 여전한 립싱크를 선보이고 있다. <세친구>,<스물넷>에서 주연을 맡았던 김현성을 제외하면 거의 연기가 직업이 아닌, 다양한 활동분야의 스펙트럼을 가진 캐스팅이다. 의도적인 소격 효과를 노린 것인지, 의도적인 가벼움을 추구하는 장선우 감독의 취향인지는 모르겠다.
NPC(Non-Playable Character: 플레이어가 조종하지 않는 캐릭터)가 자아를 찾기 시작하다니! 시스템이 분열할 조짐이다. 줄곧 ‘라이타 사세요. 라이타요..’(물론 성냥팔이 소녀의 동화에서처럼 아무도 라이터를 사주지 않으므로 입이 얼어버린 성소의 구걸은 ‘라이러 사세요..’라고 혀가 꼬이기도 한다)만을 외쳐대던 성소는 Stage 2에서 처음에는 라이터를 사주지 않는 각박한 인심에, 더 나아가서는 고아였고 학대받았던 불우한 기억이 있는지 아니면 불현듯 이 사회에 찌든 모든 악함을 징벌하려는 것인지 ‘지상 최대의 낙원’, ’꿈속에서도 일하라’라는 섬뜩한 구호가 붙어있는 기도원 작업실에 기관총을 난사한다. 신비스러운 TTL소녀가 기관총을 한 손으로 들고는 닥치는 대로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곧바로 성소 버그가 발생하고, 오비련을 앞세운 시스템은 성소를 잡아들여 교정작업을 벌이며, <성소>게임을 설계한 프로그래머 추풍낙엽(명계남)과 오뎅, 라라의 도움을 받아 주는 시스템 본거지에 난입한다. Stage 3이 로딩된 것이다. 라라의 액션 외엔 좀처럼 액션 스펙터클의 쾌락과 카타르시스를 시원하게 허락하지 않았던 영화는 주인공 주의 본격적인 활약에 힘입어 거대한 폭발과 카 체이스, 좁은 통로에서 벌어지는 헬기의 추적, 우정과 임무를 사이에 둔 이와 주의 결투, 마지막으로 보스인 시스템과의 대결 등의 미션을 깔아놓아 결말로의 클라이막스를 준비한다.
스포일러 또는 네타바레성 발언을 곁들이자면,
<성소>는 2가지의 엔딩을 제시해 놓고 있다. 오락실로 되돌아와 또다시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희미를 발견하는 그저 그렇게 비루한 ‘선택 1’. 그리고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바닷가에서 토끼 같은 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는 한 가족이 된 성소와 주의 행복한 ‘선택 2’. 현실이냐 게임이냐, 도대체 어느쪽이 승리한 것일까. 어느쪽이 <성소>를 차지하여 주인이 되었을까. 현실은 지루하고 고달프며 사랑을 이루지 못해 불행하다. 게임은 주마저도 <성소>안에 영원히 꾸며진(성소가 자아를 찾기 전 천편일률적이었던 만들어진 표정으로) NPC로 만들어놓았지만 주의 품안엔 성소와 귀여운 아기 그리고 통장에는 시스템으로부터 입금되고 있는 돈까지… 어쨌든 행복하다. 어떻게 할까? 음… 내키지는 않지만 재접속해서 다시 한번 플레이하면서 생각해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