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호러의 신호탄 [링]시리즈는 현실 속에 꿈틀거리는 공포의 위험을 신비스럽게 자극하며 열광적인 유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서구의 호러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오싹한 공포를 선사하는 [링]의 공포는 바이러스처럼 꿈틀거리는 미완의 공포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일상용품 중 하나인 비디오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아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관객들의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증폭시킨다. 스크린 뒤의 또 다른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공포의 묵시록은 관객들에게 오감이 저리는 섬뜩함을 제공하며, 서구의 호러 영화들을 만날 때 느끼는 쾌감과는 다른 차원의 공포를 경험하게 만든다.
[학교괴담]으로 시작된 일본 공포영화 중에서도 [링]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처럼 영화 밖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그럴듯하게 자극하는 신비한 매력이다. 비디오를 통한 폐쇄적 공포는 영화 속에서 '복사'를 통해 종잡을 수 없는 저주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길게 이어지지만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가 길게 드리우며, 풀리지 않는 의문의 그림자를 남긴다. 무한한 공포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없는 묘한 구조 탓에 소설 [링]을 읽는 독자나 영화화된 [링]을 보는 관객들은 현실 속에서 꿈틀거리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온몸을 마비시킬 듯한 공포가 찾아오는 것은 [링]을 볼 때가 아니라, [링]을 본 후에 찾아오는 것이다. '본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공포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이미 서구의 많은 호러 영화들에서 시도되어 왔던 것이지만, [링]은 영화 또는 비디오를 보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을 공포의 대상으로 몰아가며, 보다 복합적인 시선으로 저주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악령이 등장하고, 저주를 풀어가는 이야기로 보자면 여타의 오컬트 영화와 다를바 없지만, 전화와 비디오, 물 등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천천히 공포를 이끌어내는 정서 덕분에 결코 진부하지 않은 저주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은 매력이 [링]을 소설과 영화를 아울러 '90년대의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게한 가장 큰 요인이며, 여전히 [링]이 왕성하게 계속 만들어질 수 있는 원동력이다.
98년 [링1]이 일본에서 1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모으자, 99년 [링2]와 또다른 속편 [라센]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라센]과 [링2]는 [링1]의 성공에 힘입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링]의 기획 당시부터 함께 구상되었던 작품. 특히 스즈키 코지의 원작을 비교적 충실히 따른 [라센]과 소설과는 전혀 다른 구조의 [링2]는 동시에 개봉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복제인간 창조에 얽힌 공포와 두려움, 바이러스의 날카로운 공포로 채워진 [라센]에 비해, [링2]는 여전히 '억압'과 '두려움'의 기제로 비디오를 선택, 날카롭게 전염되는 공포의 향연으로 채워진다. 1편과 마찬가지로, 점층적으로 공포를 쌓아가는 방식의 끈끈한 공포가 주를 이룬다. 1편에 비해 미지의 공포로부터 달아나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인간군상들을 조롱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 달라진 특징 중 하나이다.
[링1]에서 남겨진 수많은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감독 나카다 히데오는 주변인물을 통한 확장된 이야기 전개를 선보인다. [링1]에서 죽은 류지의 조수 마이가 새롭게 극을 이끌어나가면서, 사다코의 저주에 얽힌 근원을 밝히고, 류지의 아들 요이치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더불어 [링1]의 주인공 레이코 역시 요이치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이와 레이코가 공포를 쫓아가는 과정은 [링1]에 비해 더욱 구체화된 공포를 선사한다. 사다코의 저주가 투영된 비디오에 얽힌 오싹함은 광기어린 저주의 산물들을 낳고, 사다코의 영혼을 품은 요이치의 광기는 보다 선명하게 공포의 근원을 마주하도록 이끈다. 사다코의 실체는 [링1]에 비해 더욱 충격적이고, 비디오의 실체 또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 소름끼치는 긴장을 선사한다.
하지만, [링2]는 [링1]의 속편에 만족해야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전체적으로 1편을 지나치게 참고, 의식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미 1편에서 꿈틀거리는 공포를 선사했던 비디오에 얽힌 공포가 그리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1편과의 연장선상에 놓인 이야기답게 지나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링]만의 모호한 분위기가 흐려진 것 또한 아쉽다. [링1]이 일상 속에 숨겨진 차가운 공포를 돌아보게 만드는 섬뜩함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것에 비해, [링2]는 '염사'라는 소재가 빈번하게 등장해 [엑소시스트]류의 오컬트 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현실 속에서 꿈틀거리는 모호한 판타지가 극명하게 드러나, 전편의 모호한 섬뜩함 대신 강한 호러의 쾌감이 가득한 판타지 영화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해, [링]만의 고유한 매력을 다소 상실한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2]는 [링1] 못지 않은 섬뜩한 공포를 제공한다. [링1]의 일그러진 일상의 공포를 뛰어넘으려는 듯, 더욱 더 관객을 놀라게 하는데 집중한다. 철저히 계산된 치밀함이 엿보이는 [링1]의 공포에 비해 다소 싱겁긴 하지만, 여전히 관객들의 오감을 저리게 하며 [링]의 공포적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링1]에 비해 주인공들이 쫓기는 장면이 많고, 시즈꼬와 사다코의 실체가 더욱 섬뜩하게 묘사되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이러한 공포는 여전히 후반부의 우물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링]에서 우물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지속되는 지점이다. [링1]에서처럼, 우물에 대한 미지의 공포보다는 사다코의 일그러진 형상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는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링2]는 일본에서 [링1]을 뛰어넘는 인기를 모았다. [링1]에 비해 보다 대중적이고, 불편하지 않은 공포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링2]는 대중영화로서의 장점을 갖췄다. 하지만, 서구 호러와는 차별된 [링]만의 고유한 매력이 다소 상쇄되어 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다.
링0 - 거꾸로 읽는 링의 공포
2000년, [링]시리즈는 거꾸로 공포의 원천을 탐구한다. [링0 - 탄생]은 [링1,2]에서 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저주를 내비친 사다코의 저주의 근원을 쫓는다. [링1,2]에 비해 끈적거리는 공포의 효과를 포기하는 대신, 아주 섬세하게 사다코의 성장과정을 어루만진다.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저주의 화신이 되어야만 하는 사다코의 이야기가 처절한 슬픔을 안긴다. 인간의 이기적인 관성과 욕망으로 인한 희생양으로 선택되는 사다코의 이야기는 드 팔마의 [캐리]를 연상시킨다.
여전히 [링2]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극장 문을 나서야 하는 관객들에게 [링0 - 탄생]은 분명 당혹스러운 선택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