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다섯시간이 넘는 분량(318분)의 <해피 아워>(2015)를 선보인 바 있는 감독은 <아사코>(2019), <스파이의 아내>(2021, 구로사와 기요시 연출) 각본, 올해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상)을 받은 <우연과 상상>을 연이어 선보이며 일본 차세대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스토리텔러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감독의 손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어떻게 변주되었을지 궁금한 관객이 많을 터. 영화에 앞서 원작을 미리 만나보자.
‘드라이브 마이 카’는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첫 번째 수록작품이다. 이는 하루키가 ‘도쿄 기담집’ 이후 9년 만에 선보인 단편집으로 일본 출간 당시 예약판매로만 3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화제작이다.
국내 출판한 문학동네에 따르면 ‘여자 없는 남자들을 모티브로 삼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자를 떠나보낸 혹은 떠나보내려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하루키 전문 양윤옥 번역가가 옮긴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사랑하는 남자’, 여자 없는 남자들’ 7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시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한다. 조명을 받고 주어진 대사를 한다. 박수를 받고 막이 내려진다. 일단 나를 벗어났다가 다시 나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곳은 정확하게는 이전과 똑같은 장소가 아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엔딩 중)
주인공인 중년 남자 ‘가후쿠’는 배우다. 미남은 아니지만, 개성 있는 외모를 지닌 꽤 연기파로 인정 받고 있다. 죽은 그의 아내 역시 배우였고,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미녀 배우였다는 것. 아내 생전에도, 그리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난 지금도 가후쿠는 아내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내의 죽음으로 봉인된 미결의 질문이 있다.
20대 여성 ‘미사키’는 운전사다. 가후쿠가 사정상 당분간 차를 운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고용됐다.
소설은 등장인물도 또 그들 간에 오고 가는 대화도 극히 드물다. 가후쿠 1인칭 시점으로 쓴 독백과도 비슷한 인상이다. 무심한 듯 주고받은 미사키와의 대화 속에 녹아든 둘의 공기를 어떻게 드러낼지, 또 남편이 결코 이해하지 못한 죽은 아내의 애정 관계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재창작했을지 특히 살펴볼 만한 지점이다.
덧붙이자면, 엔딩의 ‘일단 나를 벗어났다가 다시 나로 되돌아온다’는 문구에 주목하길!
회복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힘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실패와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 실패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능력을 의미한다. 자존감을 이루는 근간이자 긍정 심리학의 베이스로 꼽힌다. 하루키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소설에 의미를 부여해 보자면, 어.쩌.면 소설을 본 후 내 회복탄력성을 돌아볼 계기를 얻을지도.
2021년 12월 7일 화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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