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서촌의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풍경은 가을 산책을 재촉하고, 차분하게 평소의 생각을 전하는 신세경은 진솔하고 예쁘다. 얼핏 서촌 홍보 영상이요, 신세경의 화보 같은 인상을 주는 다큐멘터리 <어나더 레코드>를 처음 접한 느낌이다. 영화 <최악의 하루>와 <더 테이블>을 통해 서촌의 풍경을 담았던 김종관 감독이 그만의 화법으로 시네마틱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동갑내기 배우 겸 타로 마스터가 전해준 지도에 따라 신세경은 서촌 탐방에 나선다. 이렇듯 짜여진 동선에 따라 이동하되 머무는 공간에서는 각본 없이 진행되는 까닭에 ‘시네마틱’ 다큐멘터리. 장르와 매체에 있어 유연하게 작업해온 김종관 감독의 색다른 시도라 할 수 있다.
하루 동안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는 <최악의 하루>의 주인공처럼 혹은 <더 테이블> 속 인물들이 나눴던 진한 대화처럼 신세경은 서촌 깊숙이 들어가 공간과 그곳을 가꾼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일단 공간에 반한 후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다 보면 어느새 맞닿게 되는 삶의 한조각, 어떤 깨달음을 안기는 주역들과 만나보자.
# 서울 텐더 여정의 출발점이다. 양관진 바텐더를 알아본 신세경이 신기하다고, 반갑게 인사한다. 두 사람은 몇 해 전 도쿄 긴자의 텐터바에서 만난 적이 있다. 마침 김종관 감독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를 방문했었다. 이런 세 사람의 인연으로 인해 <어나더 레코드> 여정의 출발점으로 낙점된 공간이다. 바텐더의 열정적인 쉐이킹에 홀리다가 근사한 칵테일에 사로잡히는 하드세이크 바다.
# 옥인동 ‘무용소’ ‘무용’한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 디자인 스토어이자 위스키를 시음하는 공간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모으다 보니 대단히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어 이름을 붙였다는 여행 잡지사 출신 고현 사장. 위스키나 LP판 등 오래된 것의 가치를 음미할 수 있는 ‘유용’한 공간이다. 신세경이 맨하튼과 브룩클린 느낌이라고 평한 위스키는 과연 어떤 맛일까. 사장님은 위스키 초보자라면 A 코스를 권한다고.
# 카페 자하 떡과 핸드 드립 커피가 준비된 공간으로 메뉴 등 텍스트가 전혀 없이 오로지 사장님의 안내로 판매가 이뤄지는 곳이다. 평일에는 본업에 충실하고 주말만 오픈한다. 신세경이 “찹쌀떡을 통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라고 표현한 떡의 맛이 궁금해지는 곳이나 아쉽게도 곧 문을 닫는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 하고 싶은 바를 다 했기에 미래를 위해 잠시 멈추고 채우기로 결정했다고 젊은 사장은 말한다.
# 에디션 덴마크 덴마크 출신 요핸과 부인 이지은씨가 운영하는 쇼룸으로 맛있는 차와 크리미한 꿀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만남부터 한국정착까지 사장 부부의 로맨스에 귀 기울이게 된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으로 ‘서촌’을 꼽는 요핸, 그가 전하는 행운의 팁을 공개하자면, 홍제천을 서너 번 가서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북이가 보인다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거북이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인지도.
# 두오모 책과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평소 요리하는 걸 즐기고 또 잘(?)하기도 한다는 신세경이라 방문한 곳 중에서도 특히 더 관심을 표한다. 요리의 즐거움은 “쓸데없는 잡념을 없애고,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라는 신세경과, 30대 중반이 넘어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가면서도 본인이 식당을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허인 사장. 맛있는 음식을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에 격하게 공감하는 두 사람이다.
신세경은 서촌의 한 카페에서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난다. 그 주인공은 10대 소년 동화작가 전이수다. “미디어를 통해 만나는 사람이 전하는 (나를) 싫어하는 마음에 익숙해지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이수군은 어때요?”라는 질문에 “아빠가 그랬어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싫어한다고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거로 생각하지는 않아요”라고 답하는 전이수. 어려서부터 연예 활동을 시작한 신세경과 조금은 다른 10대를 보내고 있는 전이수 작가는 어린 나이에 대중을 상대로 자기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나이 차가 꽤 나지만, 즐거운 일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두 사람. <어나더 레코드>는 ‘공간과 더불어 사람과의 교감’이라는 김종관 감독의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사진출처_<어나더 레코드>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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