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박꽃, 이금용 기자]
배우: 나릴야 군몽콘켓, 싸와니 우툼마, 씨라니 얀키티칸, 아사카 차이쏜
장르: 공포, 스릴러,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시간: 130분
개봉: 7월14일
해당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간단평
[이금용 기자]
<랑종>은 <곡성>(2014)의 나홍진 감독이 기획과 원안을 맡고 <셔터>(2004), <샴>(2013)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한 한국-태국의 합작품이다. 제목인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을 의미하는데 영화는 제목처럼 태국의 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무당과 신내림에 대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표방한다. 대물림되는 무당의 삶을 조명하는, 휴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잔잔한 전개에 지루해질 때쯤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포감을 이끌어낸다. 점프 스케어나 분장, 사운드 등 시·청각적인 효과를 통해 끌어내는 순간적인 무서움의 감각과는 다르다. 태국의 습한 공기처럼 피부에 끈적하게 들러붙는 찝찝함에 가깝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여운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다.
인생을 신에게 바친 무당의 믿음이 뒤흔들리는 과정, 악령과 신의 모호한 경계선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지며 등장인물은 물론 관객까지도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여기서 한술 더 떠 근친상간과 존속살해는 물론 신의 형상을 본 딴 조각상의 머리를 베고, 반려동물과 갓난아기를 잡아먹는 등 영화는 금기를 마구잡이로 어기며 본능적인 불쾌함을 건드린다. 빙의된 ‘밍’이 벌이는 난잡하다 못해 폭력적인 성행위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 혐오감이 들 정도의 수위다.
다만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쓴 만큼 <곡성>과 유사하다는 평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영화의 주축인 신앙과 믿음에 대한 테마 이외에도 후반부에 등장하는 단체 빙의 시퀀스는 <곡성>을 떠올리게 한다. 어지러울 정도로 과도한 헨드헬드 기법,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 늘어지고 불균질한 전개 등 아쉬운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를 압도할 만한 확실한 존재감을 가진 작품이다.
박꽃 기자
결론부터 말하면, 러닝타임 131분은 좀 길다. 영화의 약 3/4까지는 다소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는데, 만물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태국 시골 마을 무당(랑종)의 어둑한 삶을 소재로 한 TV 다큐멘터리 ‘인생극장’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모 ‘님’(싸와니 우툼마)은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을 직감하지만,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로서의 묘도, 심장을 쫀득하게 하는 긴장도, 동남아 공포물 특유의 음산하고 축축하고 찝찝한 느낌도 약하다.
그럼에도 <랑종>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 없는 건, 마지막 1/4분량에 해당하는 클라이맥스 덕분이다. ‘밍’을 위한 퇴마를 벌이기 직전, 일주일 동안 집에서 벌어지는 괴행은 도덕적 금기라는 선을 저 멀리 넘어버리는 파탄 지경이다. 애완견과 갓난아이를 대상으로 한 CCTV 영상의 심리적 불쾌함과 불안함은 이 영화의 핵심 정서다. 마지막 퇴마 과정은 관객이 기대했던 바와는 다른 절정인데, 그 안에서 배우들은 정말 악귀가 들린 듯한 연기 혼을 불태운다. 인간의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벌어지는 괴현상을 하나의 테마로 끝까지 밀어붙인 집요함과 집념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나홍진 감독이 제작을 맡은 만큼 <곡성>과의 유사성이 여러 차례 언급될 텐데, 이는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말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소재, 장면, ‘관객은 미끼를 문 것일 뿐 사실은 실체 없는 공포’라는 종결부의 메시지 등 많은 면에서 유사성을 띤다는 점을 체크해보는 재미도 있을뿐더러, 이 자체가 여전히 관객에게는 매력적인 테마이기 때문이다. 단, <곡성>의 영향력 안에서 벗어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과의 협업이 빚어낸 새롭고 참신한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박은영 기자
나홍진과 <셔터>(2004) 반종 피산타나쿤의 만남. 나홍진 감독은 시나리오와 제작을, 반종 감독은 연출을 맡아 공포의 본원 같은 동남아 태국에서 촬영한 공포 스릴러. <랑종>은 베일을 벗기 전부터 대중의 주목 한가운데서 기대감을 무럭무럭 키웠다. 게다가 영상, 서스펜스, 반전까지 빼어난 <곡성>(2016)으로 눈높이는 얼마나 높아졌는지!
<랑종>을 보면서 느낌점을 의식의 흐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나홍진이라는 이름표를 떼면? -> ‘빙의/퇴마물의 새로운 레퍼런스로 자리매김할지도 -> 곡성이네! -> 엇!‘ 정도 되겠다. 결론은 <곡성> 같은 상업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또 동남아 특유의 습하고 끈적끈적한 호러 분위기를 예상했다면 의외로 보송보송한 편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랑종>은 형식상 서사를 정교하게 짜깁기하기에 제약이 따르고, 핸드헬드 촬영이 많아 영상도 투박하다. 빙의와 퇴마도 새로운 면이 확실히 있으나 클리셰도 상당하다. 하지만 <랑종>이 여타 유사 작품과 차별화되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대대로 ‘바얀 신’을 섬기는 집안의 랑종(무당)인 ‘님’은 조카 ‘밍’에게 신내림을 준비한다. 조카 ‘밍’이 온갖 원혼에 빙의 돼 점차 기괴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 ‘님’은 강력한 힘을 지닌 퇴마사와 함께 퇴마의식을 준비하던 중 급사하고 만다. 혼자서 의식을 강행한 퇴마사는 원혼들을 속이기 위해 약간의 트릭을 준비하지만, 참혹한 살육의 현장으로 걸어 들어간 형국일 뿐이다. 과연 생존자는 누굴까. 영화는 ‘님’의 마지막 말이 담긴 영상을 엔딩에 띄우는데, “한 번도 바얀 신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신력 높은 랑종 ‘님’의 고백을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랑종>은 인간 대 악령(악마, 귀신 등 그 호칭이 무엇이든)의 흔한 대치 구도에서 벗어난다. 우월적인 위치의 인간이 초자연적인 존재를 퇴치하기보다 범신론적인 세계관 안에서 인간도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는 “짐승, 곤충, 심지어 집 안, 숲, 산, 바위, 논까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고 오프닝에서 들려준 민간 신앙과 맞물린다.
2021년 7월 9일 금요일 | 글_이금용 기자(geumyo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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