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그 제목부터 곱씹어보면 볼수록 '홍상수틱'하다. 하루하루에 착 달라붙어 이제는 종종 의식을 깜박 건너가 버리는 '생활'을 '발견'한다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그를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 내지는 '현상'으로 규정짓게 만들었고, 나아가 '홍상수표 영화'는 암묵적인 고유명사로 정착했다. 이제 홍상수의 영화는 그에게 고정된 독특한 스타일의 맥락에서 논의되곤 한다.
홍상수표 영화를 지탱하는 내용상의 줄기는 일상성이다(어쩌면 감독 또래의 시선에 포착된). 영화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발붙인 공간에 털썩 내려앉아, 영화 밖 사람들을 흉내낸다. 그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불콰한 단어와 몸짓을 게워내고, 허름한 여관방에서 끈적한 맨몸으로 뒤엉킨다. 그리고 관객은 그 모습에서 '삶'을 발견한다. 그러나, 관객들이 발견해낸 '삶'이란 실상 감독의 초점으로 간추려진 일상의 본질이다. 홍상수는 일상의 판을 깨뜨리고 파헤쳐 얻어낸 '인간의 욕망'을 그 본질로 규정한다. 그리고 술과 섹스를 빌어 적나라하게 발가벗긴 욕망들로 스크린에 '영화적 일상'을 짜 넣는다.
[생활의 발견] 또한, 이제까지 보여주던 일관적인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홍상수 변주곡' 중 하나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작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시선을 보여준다. 전작들에 서린 냉소적인 조롱이 어느 정도 거두어진 것. 대신 그 틈새에서 유머의 형식을 빌린 연민이 느껴진다. 곳곳에서 풍겨나는 웃음은 영화를 훨씬 유연하게 만들고, 눈치채기 어렵게 스쳐가던 형식상의 특징들도 [생활의 발견]에서는 보다 더 두드러진다. 즉, 감독의 스타일이 상당히 물렁물렁 풀려나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홍상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일 가능성이 높다.
'트루 로맨스'라는 영화의 홍보문구처럼, [생활의 발견]은 한 남자의 연애담을 차용해 '진짜' 인간을 파고든다. 현실의 시간을 영상의 시간으로 응축하다 보니, 포장은 뜯겨져 나가고 알맹이만 남았다. 그렇게 드러난 맨얼굴에 우리는 당황하고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하고 호기심이 생긴다. 감독이 남녀간의 관계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술과 섹스를 선택한 것도 최소의 시간에 최대의 '솔직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이다.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욕망이 증폭되는 장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하며, 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에서 각각 반복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구를 통한 반복은 보편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도발적인 정사장면마저, 반복을 통해 환상이 제거된 일상적인 섹스의 나열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서로 다른 제목을 단 에피소드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혹은 건너뛰며 다양한 형태로 연결된다. 삶 또한 얼핏 관련 없는 여러 단면들로 조각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들을 관통하는 연결고리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에피소드들 사이에 삽입되는 '제목 장면'은 단절과 소통을 동시에 의미하는 '문'으로 작용한다. [생활의 발견]을 비롯한 홍상수 영화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는 이렇게 참신한 형식의 창출일 것이다.
전작들에 비해 가볍고 편안해진 [생활의 발견]을 두고 옹호의 목소리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감독이 특유의 독살스런 고집을 포기하고 전향할 것인지, 혹은 기존 방향에 여유로운 연륜을 더할 것인지는 그의 행보를 좀 더 지켜본 후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