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한국여성민우회와 씨네21이 공동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실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주제로 영화계와 여성운동계, 학계 전문가가 모여 두 시간의 논의를 진행했다. 포럼에는 70명 이상의 인원이 참석했다.
포럼 시작 전 인사말을 전한 씨네21 주성철 편집장은 “한국 영화 촬영 현장에서 더 이상 합의되지 않은 그 어떤 연기도 감독의 연출력이나 배우의 열정적인 연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포럼 개최 취지를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정하경주 소장은 “영화 촬영장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이 영화계 관행으로 묵인되는 현실을 이제는 드러내려고 한다. 피해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피해 사실을 밝힌 후 업계에서 자신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 지도 모른다는 것, 또 캐스팅에서 배제되는 일이다. 직업이나 생계가 위협 받는 것”이라며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조인섭 변호사는 “오늘 다룰 사건의 경우 가해자인 B배우는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가 강간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인 A배우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진 것은 인정 되지만 고의는 아니며, 설령 고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업무로 인한 정당행위에 해당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스팅 난항을 예상한 영화감독은 애초에 피해자인 A배우에게 베드신 없는 15세 관람가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고지한 후, 가해자인 B배우에게만 가슴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마음대로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촬영 당일에도 피해자인 A배우는 강간장면이 아닌 가정폭력을 당하는 장면으로 상황을 인지한 후 연기에 들어갔다. 두 배우가 알고 있는 객관적 정보가 상당히 다른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과연 정당한지 생각하게 된다”고 견해를 밝혔다.
<미씽: 사라진 여자>를 연출 한 이언희 감독은 “고소 대상에서 제작자와 감독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해자 B배우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생각 해 보면 배우가 감독에게 그런 지시를 받았을 때 ‘이번에 최선을 다 해야 다음 영화에 선택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현실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 문제는 이런 사건의 피해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작자와 감독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 있어야 상황이 발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번 포럼에 참석한 영화계 종사자는 전국영화산업노조 안병호 위원장, 영화배우이자 영화계 페미니스트 모임 ‘찍는 페미’ 개설자 김꽃비, 씨네21 이예지 기자 등이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 연세대 젠더연구소 손희정 연구원도 참석했다. 포럼 말미에는 배우 곽현화가 함께해 최근 <전망 좋은 집>의 ‘감독판’ 유료 공개 문제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수성 감독과의 소송 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 한마디
예술이라는 미명에 짓눌린 영화계 내 성폭력 (잠재된) 피해자들을 위한, 의미 있는 한 걸음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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