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여자들이 총을 쥔 채, 질주를 시작한다? 시놉시스며 카피만 보아해선 페미니즘을 가미한 꽤나 도발적이고 통쾌한 로드무비가 한 편 탄생할 것 같은데, 어라?
하긴, 불안하기는 했었다. 처음부터 [아프리카]는 이요원, 김민선, 이영진, 조은지라는 쭉쭉빵빵한 모델 아가씨들이 집단으로 출연한다는 사실로 화제가 되었던 터라. 하기사 여자인 나조차도 시사회장에서 마주친 그녀들의 야리하고 매끈한 몸매에 넋을 놓았으니 남자들이야 오죽하랴.
그러나 아리따운 그녀들의 섹시한 포즈를 상상하며 아프리카로 사냥 떠날 꿈에 부풀어 계셨던 늑대 여러분, 그만 침 닦으시라. 아쉽게도 [아프리카]는 Africa도 아닌 A.F.R.I.K.A. 당신들이 떠올리는 정글 속 야성녀들은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오. (영화는 남성관객을 의식해서인지 초반부 바닷가에서 이요원과 김민선에게 핫팬츠를 입힌 채 발랄하게 뛰노는 장면을 연출하나, 이 장면 노래방 반주 배경 영상마냥 조잡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아프리카]는 그 황당무개함에 혀를 내두르다 내두르다 지쳐, 혀 빼물고 축 늘어지는 영화이다.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우리 사전에 '개연성'이란 없다!" 소리 높여 다짐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아무런 연관 없이 끊어진 에피소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국이다. 그래도 '코미디 영화'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으니 웃기기만 해다오...했으나 그들이 나열하는 수준 낮고 상투적인 코미디는 시간이 갈수록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 바닥까지 떨어진 턱을 주워 올려 끼느라 고생했다, 헉헉헉)
아무래도 [아프리카]의 야심 중 하나는 '패러디로 웃겨보자!'였던 듯, 유독 이 영화에는 다른 영화 이름이 주룩주룩 등장한다. 그러나 가장 주력한 [주유소 습격사건] 패러디에 이르러 그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패러디란 자고로 은근함에서 제 맛이 나는 법. 관객들은 '어? 저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가만있어보자...오호라, 그 영화의 그 장면이구나~!' 스스로 깨닫는 순간 번뜩이는 뿌듯함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자~ 주목하세요! 지금부터 [주유소 습격사건]을 패러디하겠어요' 혼자 지레 신나서 북치고 장구치는 격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오바'하는 패러디로 관객들을 민망하게 만든다.
여성 버디 무비는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인습적인 사회를 탈피해 이상향으로 질주해 가는 이른바 '페미니즘'의 성격을 띄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프리카]가 [델마와 루이스]와 비교되는 목소리도 종종 들었다(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더라). [아프리카]의 그녀들은 영화 속에서 영웅시되는 것처럼 '치열한 여전사'가 될 수 없다. 왜냐, 그녀들은 우선 머리가 비었다. 배고프다고 무턱대고 빵집을 털거나, 생긴 돈으로 옷사입고 머리하고 호텔을 전전하는 그 철딱서니없는 모습을 좀 보아라. 게다가 은행을 털어서 성형수술을 하겠다고 나불대는 조은지. 당장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마 땡그렁 깡통 소리가 났겠지). 그녀들의 질주는 목적이 없고, 충동적이며 대책도 없다. 이런 주인공들 사이에서 '여성과 사회'에 관한 진지한 고찰이 떠오를 가능성이란 전무하다. 따라서 이영진의 고뇌는 순전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고양이를 부탁해], [눈물]등 탄탄한 작품들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쳐 주목받던 네 명의 여배우들의 연기마저 신통치 않아 보이는 것은, 어쩌면 허술하고 어설픈 [아프리카] 탓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