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가능하게 만든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자연광이다. 밑바닥의 삶이지만 남녀는 어두운 지하 창고나 방구석이 아닌 오픈된 공간으로 나간다. 얻어터지고 피를 흘려도, 뭉뚝한 두 다리가 남루하게 느껴져도 언제나 햇빛은 인물을 비추고, 그때 비로소 남녀는 솔직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낸다. 차 안에서도, 테라스에서도 자연광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인물의 감정을 포착해내는 또 하나의 카메라처럼 보인다.
마리옹 꼬띠아르와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두 배우는 그 매혹적인 찰나의 순간들을 표정은 물론 온몸으로 표현한다. 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본능적 야수성을 영화 전반에 걸쳐 압도적으로 분출한다면, 마리옹 꼬띠아르는 심리 변화의 섬세한 결을 놓치지 않는다. 병실에서 상실감을 표현할 때도, 사고 후 처음으로 물속에 뛰어들 때도, 기구에 매달려 석고로 본을 뜰 때도, 처음 의족을 달고 걸어서 외출할 때도, 조심스럽게 의족의 스타킹을 벗을 때도 그녀의 세밀한 디테일은 숨 막히게 처절하고 격정적이고 아름답다.
먹먹하다. 옥죄던 긴장이 벅참으로 변해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추스르기 무섭게 몇 번이고 여진이 훑고 지나간다. 삶의 나락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남자와 여자의 신파 멜로드라마가 무어 그리 대단할 게 있다고. 하지만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은 그 통속 스토리와 장르 컨벤션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특별하고 예측할 수 없는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창백한 얼굴도, 스크린에 눈부시게 투영된 자연광도, 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터뜨리는 울음도, 두 사람이 되찾은 삶의 빛도 가슴 속에서 한동안 울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3년 5월 2일 목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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