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가 춤을 추었던 이유는?
예술은 온갖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저만치 벗어나 고고한 자태로 순결한 하늘만 떠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어쩌면 역사는 이런 예술의 외형적 특성을 가장 영악하게 이용해 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져 보라, '안' 정치적인 이미지 덕에 기실 '더' 정치적인 의미를 교묘히 숨긴 채 오리발 내밀기 쉬운 데다, 사람들의 인식에 스르륵 거부감 없이 스며들지 않는가. 참다운 예술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수많은 정치가들이 정치의 수단으로 예술을 택했고, 그러한 연유로 어떤 시대에서는 정치와 예술이 공생관계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왕은 춤과 음악을 이용하여 왕권을 드높였다. 태양의 문양과 빛깔로 치장한 채 화려한 동작을 선보이는 루이의 춤은, 왕을 태양과 같이 위대한 지위로 격상시키려는 치밀한 계산 하의 '정치적 예술'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던 음악이나 춤은 대단히 화려하고 웅장하며 우아한, 귀족적 성향을 띈 것들이었다.
감독은 음악으로 인간 역사의 역정을 풀어내는 데 주력한다. 라인하르트 괴벨의 지휘로 다시 태어난 륄리의 음악은 영화의 장면 장면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위엄있게 전달한다. [왕의 춤]에서의 음악은 영상에 이용당하는 대부분의 영화 음악에서 찾기 힘든 독립심을 지니고 있다. 즉, 음악이 영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음악의 흐름이 인물의 변화와 일치하고, 따라서 이야기 구조나 스크린을 수놓는 아름다운 춤의 곡선과도 맞물린다.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찾아낸 륄리의 음 하나 하나가 물 만난 고기처럼 섬세하게 관객의 귓가를 뛰논다.
루이는 고결한 음악에 맞추어 위풍 당당한 춤사위를 펼쳐 보임으로써 '왕'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륄리는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통로였다. 따라서 루이는 자신의 권력을 온전히 되찾고 난 후, 륄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욱이 루이가 다리를 다침으로써 권력없는 왕의 허울뿐인 '상징'이었던 춤에 안녕을 고하고, 실제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왕의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그들의 애증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 와중에 륄리의 초조한 질투와 증오는 극에 달해 동반자였던 몰리에르까지 저버리게 만든다.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의 변화 과정을 유려한 영상과 휘감기는 선율을 동원해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왕의 춤]은 역사 속에 은근하게 엎드려 있던 정치와 예술의 상관관계와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인간의 욕망을 중후하게 그려냈다. 무엇보다도 줄곳 음악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의 음악에 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 영화라 하겠다. 제라르 코르비오, 꼭 그의 이름이 갖는 신뢰만큼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