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 바디스>는 아이작 마리온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처음에는 인터넷에 올라온 <사랑에 빠진 좀비>라는 7페이지짜리 온라인 소설이었는데,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웜 바디스>라는 제목으로 정식으로 출간됐다. 좀비 스스로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 그리고 인간의 뇌를 먹으면 그 인간의 생전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좀비물과 확실히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점이 좀비물이라는 장르 뒤틀기의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의 말대로 좀비를 문학적인 소재로 활용한 결과에 가깝다.
스타일과 설정 면에서 볼 때 이 영화에서 기존의 작품, 혹은 다른 장르영화의 흔적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몬스터 남자와 인간 여자의 페어라는 설정에서 <트와일라잇>이 겹쳐지는 건 퍽 자연스러울 터다. 더 크게 보면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에 속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것이다. ‘R’과 ‘줄리’라는 이름부터가 작가의 위트 있는 패러디로 보인다. 줄리를 찾아간 R이 2층 발코니에서 그녀를 올려다보는 장면에서 이런 기시감은 확신이 된다. 상대적으로 과감한 추측이지만, 창백하고 흉터가 있는 R의 얼굴, 어눌한 몸짓과 말투는 <가위손>의 에드워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영화 곳곳에 짙게 깔려 있는 아날로그의 향취다. 로이 오비슨, 건스앤로지스, 블랙 키스, 스콜피온스 등 21세기 최신 트렌드와는 거리가 한참 먼 노래들이 시종일관 귀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이런 음악들은 다소 밋밋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스토리에 속도감과 리듬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바이닐 레코드, 스노우볼, 폴라로이드 등 시대착오적인 소품들의 등장에 이르러서는 <웜 바디스>가 어떤 노스탤지어를 가진 영화인지가 분명해진다. 왜 LP를 듣느냐는 줄리의 질문에 R은 “소리가 살아있어서”라고 대답한다. 폴라로이드로 R의 사진을 찍으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소중한 것이 곧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줄리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웜 바디스>는 미국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의 전형적인 틀을 답습하는 듯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크고 포괄적인 주제를 관통한다. 사실 이 영화의 좀비란 소통이 사라지고 인성이 말살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은유라고 봐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건 사랑과 소통과 상호이해라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개인의 소소한 관계와 선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웜 바디스>는 그런 보편적인 테마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영화다.
2013년 3월 16일 토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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