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와 국내에서 개봉했던 대만 영화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필두로 순수한 사랑을 담은 멜로 영화가 대부분 이었다. 특히 지난해 국내 관객을 만났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은 ‘대만판 <건축학개론>’이라 불리며,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아련한 첫사랑의 향수를 전했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세 친구의 사랑을 그린 <여친남친> 또한 멜로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풋풋함과 거리가 멀다. 영화는 1990년대 대만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세 인물들에게 고등학생 시절은 첫사랑의 추억 대신 자유가 없는 억압의 시간들로 채워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가 깡그리 무시되는 학교 시스템에 저항한다. 세 인물들은 자신들의 저항 정신을 어떻게 표출할까에 집중한다.
<여친남친>은 시대적 배경을 탄탄하게 다진 후 세 인물들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다. 양야체 감독은 이들의 삼각관계를 보여주며 그 당시 대만의 억압된 시대적 분위기를 전한다.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만 정작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자유를 부르짖고 싶지만 그렇지 못했던 대만 사람들의 상흔이 엿보인다. 동성애, 불륜 등 강한 소재를 차용한 영화에서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이 전해지는 건 세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특히 계륜미의 연기가 돋보인다. 발랄하고 터프한 10대 소녀에서 성숙미를 자랑하는 20대 여인에 이르기까지, 사랑과 우정을 모두 놓치려 하지 않는 메이바오의 복잡한 심경을 잘 전달한다. 첫사랑 소녀의 이미지가 다분했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샤오위 때보다 연기의 폭이 더 깊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상기시킬 수는 없지만 사랑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친남친>은 대만 영화의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2월 8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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