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벤 제틀린은 첫 장편 <비스트>를 친구의 연극 <달콤하고 맛있는>에서 출발시켰다. 연극 원작이라는 점을 간과하더라도 영화는 시적이면서 기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심장 박동 소리에 천착하는 소녀는 배운 적 없지만 생명이 갖는 무게를 알고 있다. 문명사회의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배제한 욕조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항목이다. 소녀는 생명이 태어나고 언젠가는 소멸한다는 우주의 순환 법칙을 본능적으로 습득한다.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아버지가 딸에게 고기 잡는 법과 날것으로 먹는 법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영화는 헤어짐을 연습해야하는 아버지와 딸의 드라마와 모든 생명이 무너져가는 땅의 서사를 공존시킨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깨어난 원시동물 오록스가 그나마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달려오는 모습은 무서운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의 죽음, 딸의 삶, 파괴되는 생명, 이로 인해 살아남는 동물, 모든 죽음은 곧 또 다른 삶으로 귀결된다. 이 작은 철학을 영화는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관통한다.
판타지와 우화에 가까운 영화가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현실을 뒤흔드는 힘은 영화 속 대지에서 기인된다. 영화는 태풍 카트리나가 할퀴고 지나간 진짜 루이지애나 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허에서 삶을 시작하는 지역 주민들을 모아 만들어졌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본 적 없는 얼굴인 것은 이 때문이다. 폐허가 된 도시에 세워진 가상의 섬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역사는 그래서 강력한 현실 비판을 동반한다. 죽어가는 욕조 섬, 사라져가는 대지는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의 미래다. 하지만 작은 체격으로 죽음과 공포 앞에 두 눈 부릅뜨고 맞서는 소녀 허쉬파피는 또 다른 미래다. 이 소녀가 갖는 의미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넘어 혁명적이다. 그래서 디스토피아에 둥지를 튼 영화는 놀랍도록 아름다울 수 있다. 시적이면서도 동시에 시의성 강한 우화는 조용히 차오르다 성난 파도처럼 폭발시킨다. 떨림, 희망, 뭉클함이라는 단어로 대체되는 감정이다.
2013년 2월 5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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