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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를 고발하는 환상동화 (오락성 6 작품성 8)
비스트 | 2013년 2월 5일 화요일 | 양현주 이메일

제방 너머 욕조 섬에는 6살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왈리스)와 아빠 윙크(드와이트 헨리)가 살고 있다. 이들에게는 녹슨 컨테이너박스가 아늑한 보금자리다.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차오르는 물을 막기 위해 건설된 제방, 그 너머에는 흉물스럽게도 길쭉한 기둥 위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허쉬파피는 제방 너머의 연기 가득한 세상보다 욕조 섬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어린 소녀 허쉬파피의 눈과 입으로 그려지는 가상의 세계는 놀랍도록 현실과 닮아 있다. 점점 무너져가는 생태계,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고민하고 싸우는 사람들 말이다. 태풍이 삶의 터전을 할퀴고 홍수가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는 와중에도 윙크는 허쉬파피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 언뜻 보기에도 미래가 없는 디스토피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는다.

감독 벤 제틀린은 첫 장편 <비스트>를 친구의 연극 <달콤하고 맛있는>에서 출발시켰다. 연극 원작이라는 점을 간과하더라도 영화는 시적이면서 기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심장 박동 소리에 천착하는 소녀는 배운 적 없지만 생명이 갖는 무게를 알고 있다. 문명사회의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배제한 욕조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항목이다. 소녀는 생명이 태어나고 언젠가는 소멸한다는 우주의 순환 법칙을 본능적으로 습득한다.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아버지가 딸에게 고기 잡는 법과 날것으로 먹는 법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영화는 헤어짐을 연습해야하는 아버지와 딸의 드라마와 모든 생명이 무너져가는 땅의 서사를 공존시킨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깨어난 원시동물 오록스가 그나마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달려오는 모습은 무서운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의 죽음, 딸의 삶, 파괴되는 생명, 이로 인해 살아남는 동물, 모든 죽음은 곧 또 다른 삶으로 귀결된다. 이 작은 철학을 영화는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관통한다.

판타지와 우화에 가까운 영화가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현실을 뒤흔드는 힘은 영화 속 대지에서 기인된다. 영화는 태풍 카트리나가 할퀴고 지나간 진짜 루이지애나 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허에서 삶을 시작하는 지역 주민들을 모아 만들어졌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본 적 없는 얼굴인 것은 이 때문이다. 폐허가 된 도시에 세워진 가상의 섬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역사는 그래서 강력한 현실 비판을 동반한다. 죽어가는 욕조 섬, 사라져가는 대지는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의 미래다. 하지만 작은 체격으로 죽음과 공포 앞에 두 눈 부릅뜨고 맞서는 소녀 허쉬파피는 또 다른 미래다. 이 소녀가 갖는 의미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넘어 혁명적이다. 그래서 디스토피아에 둥지를 튼 영화는 놀랍도록 아름다울 수 있다. 시적이면서도 동시에 시의성 강한 우화는 조용히 차오르다 성난 파도처럼 폭발시킨다. 떨림, 희망, 뭉클함이라는 단어로 대체되는 감정이다.

2013년 2월 5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창의력 만점
-무서운 신인 무서운 아역
-칸 황금카메라상, 선댄스 심사위원대상이라는 위엄
-영화제 친화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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