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마텔의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는 영상으로 옮기기가 꽤나 까다로운 작품이다. 주 무대가 태평양 한 가운데 표류한 배 안인 소설은 정적이다. 이렇다 할 공간 변화가 없다보니 다양한 영상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와 절묘한 궁합을 이루지 못한다. 소년이 말도 안 통하는 호랑이와 교감을 이룬다는 설정 또한 영상으로 구현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안 감독은 이 난제를 보란 듯이 풀어낸다. 전작에서 인간의 세밀한 감정을 수려한 영상과 함께 표현했던 그는 파이의 요동치는 감정을 잘 드러낸다. 한 순간에 가족을 잃은 슬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자연과의 싸움, 그리고 호랑이와의 공존을 터득하며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그의 모습은 정적인 영화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다. <와호장룡>의 대나무 숲, <브로크백 마운틴>의 설산 등 자연의 모습을 선보이며 각 장면의 분위기를 조성했던 감독은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광경을 전면에 내세우며 파이의 고난과 역경을 흡입력 있게 표현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안 감독의 첫 3D 영화다. <와호장룡>의 와이어 액션, <헐크>의 CG 등 다채로운 영상 구현을 꾀했던 감독의 전작을 보면 그가 3D 영상이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도전했다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감독은 3D 영상을 통해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원작의 단점을 메운다. 수면 위로 뛰어 올라 바다 표면을 부수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고래, 빛을 내는 해파리, 구명선 위를 나는 날치 떼의 움직임 등 3D 영상은 지루함을 걷어내기 충분하다. 특히 폭풍우가 몰아치며 배가 침몰하는 장면은 물을 소재로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는 3D 영상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물을 이용한 입체감은 물속 유영 장면을 3D 영상으로 보여줬던 <생텀>보다 더 발전된 양상이다. 배 침몰 장면은 여타 3D 영화에서 선보였던 고공 활강 장면과 비견될 정도로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안 감독은 영상의 다변화를 꾀하면서도 소설의 주제의식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종교에 상관없이 다양한 신을 믿었던 파이가 생존의 길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모습은 마치 고행을 몸소 실천한 수행자와 흡사하다. 파이가 온 몸으로 표현하는 철학적인 메시지가 보는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지만 영화의 감상을 저해할 정도는 아니다. 파이의 고행은 함께 떠나볼만 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2013년 1월 2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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