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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물들어가는 중년 로맨틱 코미디 (오락성 6 작품성 6)
다시, 뜨겁게 사랑하라! | 2013년 1월 2일 수요일 | 양현주 이메일

미모는 철 지난 꽃처럼 시들어가고 의사는 유방암을 선고하고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극악무도한 상황을 상상해보라. 드라마였다면 시청률을 담보하는 막장 신파가 되겠지만 영화에서는 난감한 상황도 유쾌한 해피엔딩으로 달려갈 수 있다. <다시 뜨겁게 사랑하라>는 중년의 로맨스라는 목적을 향해 명확하게 달려간다. 소재와 배경으로는 신선함에 대한 기대를 갖기는 어렵지만 감독의 전작은 비폭력과 포용, 인간애와 통찰을 절묘하게 다뤘던 <인 어 베러 월드>다. 전작을 생각하면 덴마크 여성감독 수잔 비에르의 의외의 행보다. 영화는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감독의 비범한 감각보다는 대중성을 충실히 이행한다.

시작과 동시에 암 투병 중인 여주인공 이다(트린 디어홈)를 비춘다. 자식 둘은 건실하게 자랐고, 미용사로서 단란한 안정감을 누리고 있는 평범한 주부다. 항암 치료도 성공적이다. 이제 큰 불은 껐나 싶었지만 남편이 집안까지 버젓이 내연녀를 데려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한다. 코앞에 닥쳐온 딸의 결혼식도 혼자 가야할 판국이다. 공항 주차장에서 접촉 사고까지 발생하자 결국 이다는 모르는 남자 앞에서 무너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는 사위의 아버지다. 이 남자 필립(피어스 브로스넌)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그는 아내와 사별한 후 마음의 문을 닫고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 일쑤다. 상실감으로 일중독에 기대어 살아간다.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자식들의 결혼식을 기다리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열어나간다.

우연한 사고로 만나는 남녀,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는 첫 만남, 오해가 점차 관심과 사랑으로 변모하는 화학작용까지,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중년의 로맨스라는 주제와 배경을 생각하면 손쉽게 <맘마미아!> <투스카니의 태양>이 떠오른다. 다만 주인공에게 암 투병의 생존자라는 핸디캡을 부여하면서도 보통의 영화에서 병을 대하는 태도와는 다르게 접근한다. 풀리지 않는 전개를 위한 극약처방이나 최루성 신파의 소재로 사용하는 대신 일상성을 가져온 것이다. 또한 로맨스의 발판으로 딸의 결혼식이라는 사건과 이탈리아라는 이국적 공기를 마련하지만 관계의 진행 속도는 느리다. 그래서 더 현실감을 입는다. 이 일상적 속도가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호들갑스럽지도, 극적이지도 않게 사랑을 대하는 방식은 관계를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커다란 욕심도 욕망도 없이 살아온 여주인공의 소소한 행복을 빌어주고 싶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배경과 전개 방식, 캐릭터 등은 유쾌하고 긍정적인 대중 영화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전작들을 염두에 두고 찾은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감을 갖고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는 감독이 가진 넓은 스펙트럼으로 읽히기도 한다. 감각적인 편집이나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영리함을 무기로 하는 영화들에게 지쳐있다면 오히려 휴식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일상성이 영화가 갖는 장점이 될 테니 말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아무리 주고받아도 모자란 것이 사랑'이라는 아포리즘은 영화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빠지고 마는 사랑의 속성과 닮았다.

2013년 1월 2일 수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사랑이 고픈 중년여인이여, 이탈리아로 떠나라!
-<맘마미아!>, <투스카니의 태양> 동류영화
-막장 일일 드라마에 지친 주부들을 위한 대리만족형 선물
-낸시 마이어스가 되고 싶었던 수잔 비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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