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을 훌렁 넘긴 어느 날, 모 과목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과제를 받아 들었다. 제출할 리포트를 위해 곰곰 ‘과거’를 되짚어 보다가, 내 어린 기억 속에서 방글방글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 다니는 예쁜이들이 모두 해외에서 입양되어 왔다는 사실을 불쑥 깨달았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들은 서양 어디쯤에서 흘러들어 왔다 치고, 까만 머리들-갈색 머리도 봐준다-만이라도 쏙쏙 추려 보았으나 낭패였다. 대부분 동해 건너 섬나라에서 태어난 고 녀석들은 훌쩍 이름만 바꿔 우리 나라 바보 상자로 줄줄이 팔려왔을 따름이었다. 머리 구석구석을 샅샅이 찔러봐도 튀어나오는 우리 토종 아이들은 그 이름도 정겨운 하니, 까치, 둘리 뿐이었다.
TV앞에 쪼로록 모여 앉은 우리 아이들이 피카츄, 라이츄, 그리고 차마 이름도 외우지 못할 만큼 많은 포켓몬들과 디지몬들에게 꺅꺅 열을 올리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나 어릴 때처럼 아직 ‘한국 TV 애니메이션’은 실종 상태인가도 싶다.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TV애니메이션이 극장 애니메이션의 기반 역할을 담당하는 해외의 전례를 살펴볼 때,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 또한 짙은 안개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가 한다. 디즈니 만화 영화가 전부였던 우리 극장가에 이제야 저패니메이션의 고전이 하나 둘 끼어들고, 극장에 간판을 달았던 우리 극장 애니메이션이라곤 고작 ‘블루시걸’ 밖에 떠오르지 않으니 못내 안타까운 노릇이다. 먼저 출발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저만치 질주하는 일본과 미국, 유럽 애니메이션을 따라 잡으려면 힘겨운 도약이 필요할 테니 넓은 아량으로 다독여주자 해도 우리 애니메이션은 분명 발전의 기미가 너무 미약했음이 틀림없다.
[원더풀 데이즈], [마리 이야기], [아크]등 [런딤:네서스의 반란]에 이어 속속 우리에게 선보일 작품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우려 섞인 기대를 하게 된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다양하고 풍성한 가지를 뻗어나가 한 그루 아름드리 나무로 하늘을 찌르기 위해서는 관객의 관심이라는 비옥한 양분이 절실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