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 프로젝트>의 놀라움은 (긴 시간이 소요되는)공약이 지켜졌다는 것에만 있지 않다. 개인의 이벤트로 그칠 법한 약속이 영화제작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메이저 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유통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각종 공약이 난무하는 영화계에서 하정우는 자신의 공약이 가장 영양가 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함께할 원정 대원들을 뽑고, 룰을 정하고, 로고를 손수 제작하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하정우를 보고 있자면 그가 이 프로젝트에 흠뻑 매료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국토대장정은 단순한 공약 이행을 넘어 하나의 놀이로 발전했음이 분명하다.
<577 프로젝트>는 영화적 야심을 품은 작품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기조를 지키는 가운데 리얼 버라이어티 <1박 2일>과 <무한도전>의 포맷을 빌려와 누구나 편하게 보고 웃을 수 있도록 버무렸을 뿐이다. ‘막간 토크쇼’, ‘몰래 카메라’를 비롯, 협찬 받은 상품들을 대놓고 광고하는 호기도 부린다. 이토록 강도 높은 PPL이 단순한 패러디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광고에는 황당하지만 기발한 창의성이 녹아있다. 하정우의 DNA에 B급 감성의 소유자 쿠엔틴 타란틴노 유전자가 흐르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마저 든다. <1박 2일> <무한도전> 등이 이미 취한 것들이니 형식 자체가 독창적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영화라는 장르에 TV예능프로에서나 볼법한 리얼 버라이어티 방식을 이식했다는 점에서 <577 프로젝트>는 그만의 개성을 입는다.
한없이 가벼워 질 수 있는 분위기는 행군에 참여한 대원 개개인의 사연을 심어 놓음으로서 막아낸다. 아이러니 한 건, 시나리오 하나 없는 이 여정에도 엄연히 주연과 조연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많은 수의 배우들 중에서 카메라는 개성 강한 배우에게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드라마를 부여한다. 카메라의 선택을 받지 못한(혹은 편집에서 잘려나간) 신인배우들은 이 프로젝트에서조차 단역으로 머물고 있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577 프로젝트>를 돋보이게 만드는 무기는 역시 캐릭터들이다. 나이 35살에 부모님 신세를 지고 살아가는 백수에 가까운 한상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갓 무명의 터널을 빠져나온 김성균, ‘아침드라마계의 장동건’ 이지훈, 후방십자인대 파열에도 불구하고 완주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차현우 등 여러 캐릭터의 사연이 합쳐지면서 청춘의 맨살이 드러난다. 그들의 긴 인생에서 577km가 지니는 의미는 각별할 것이다. 한국 영화사에 있어서도 577km는 꽤나 오랜 시간 독특한 사례로 기억될 테고 말이다.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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