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의 24년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화제가 됐던 만큼 <봄, 눈>은 배우 윤석화를 위한 장을 펼쳤다. 사업실패 후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놀고먹는 남편(이경영), 얼굴 맞대면 찌푸리기 바쁜 딸(심이영), 회사일로 만나기 힘든 아들(임지규), 그 속에서 순옥(윤석화)은 생활비 궁리에 계산기 두드리기 바쁘다. 순옥은 자식 뒷바라지도, 얼마 전 시작한 청소부 일도 기껍다. 육 개월 시한부 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재조립되는 이 영화에서 꽃은 윤석화다. 윤석화는 여배우에게는 도전이자 실험과도 같은 삭발까지 감행한다. 하지만 마른 토양에서 아름다운 꽃도 시들기 마련이다.
<봄, 눈>은 통속이 진부함을 넘어 어떻게 신파의 강요 속에서 이야기가 부서져 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족만을 위해 이름을 버리고 살아간 엄마의 죽음 앞에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가족, 전형적이지만 나쁜 소재는 아니다. 문제는 대사, 연기, 캐릭터, 쇼트 하나 제 몫을 하지 못 한다는 데 있다. 익숙한 소재에 감정의 과잉은 독이나 다름없다. 감동을 제조하려는 슬로우 모션의 남용이 관객과 화합하지 못하고 감정을 휘발시킨다. 누이를 잃은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다는 설명이 그 이유로 설명될까. 영화를 사유화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죽음 앞에서 절절한데 스크린 바깥 관객은 관조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불쑥 불쑥 끼어드는 기독교적인 상징들이다. 평생 전도하며 살겠다는 특수한 대사, 별 의미 없이 끼어드는 교회건물 풀샷, 그리고 예배 장면 등이 이야기와 붙지 않고 전시될 뿐이다. 친숙한 소재 탓에 여러 유사한 장르 영화들과도 비교선상에 오른다. <애자>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같은 카테고리 안에 묶여야겠지만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봄, 눈>을 넣기에는 다른 영화들에게 미안해진다. 직접적으로 특정 영화들의 명장면이 따라붙기도 있다. 남편에게 세탁기 작동법을 가르치는 장면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흔적을 찾게 되지만 같은 감성을 소환하지 못한다. 신을 원망해도 감히 <밀양>을 언급하기는 어렵다. 진부한 소재라는 일반론보다는 기본기 자체가 평균 이하다.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패기도 의미도 차기작을 향한 기대도 찾기 힘들다.
2012년 4월 24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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